현실의 벽을 처음으로 맛보다
어렵게 얻어낸 독립 허락, 가족들의 마음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르니 이제부턴 달릴 시간이다. 할머니의 동의를 얻은 1~2주 뒤에 바로 중개사와 약속을 잡았다. 처음 둘러볼 지역은 회사 근처. 말이 좋아 회사 근처지 회사는 강남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을 가장한 순진한 마음으로 부동산 중개 앱에서 순전히 '마음에 드는' 강남권을 먼저 둘러봤다.
가격을 떼고 생각하면, 중개사가 처음 보여준 집은 자취 새내기인 나에게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강남 빌딩 숲 사이에 있었지만 고층이었고, 그래서인지 햇빛은 고스란히 방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원룸에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오븐과 스타일러까지 있어 내 눈은 금세 휘둥그레졌다. 거기에 일중, 이중도 아니고 삼중 보안 시설까지, 정말 '갓벽'했다. 하지만 월마다 나갈 비용을 계산해보니 월세와 관리비를 합치면 8~90만 원 수준이었고, 월 비용을 관리비 합산 70만 원으로 설정한 나에게는 꽤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잘~ 보고 갑니다!'
진짜 잘 보기만 한 집이었다. 그렇게 돌아본 강남권, 빌라는 평수가 그나마 넉넉했지만 낡은 곳이 많았고 5평짜리 오피스텔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강남이라는 걸 알고 왔지만 역시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눈을 돌려 알아본 사당/교대 부근을 거쳐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곳도 결코 저렴하지는 않지만 운 좋게 월세가 60만 원을 넘지 않고 보안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여기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집 앞을 흐르는 하천 때문이었다. 러닝이 필수인 나에겐 이것만큼 나를 홀리게 하는 건 또 없었다.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며 친구들과 오마카세에 가고, 1인분에 2~3만 원 하는 비싼 곱창을 먹을 수 있는 내 상황을 보며 예전보다 늘어난 수입 덕분에 행복해했던 나였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든 생각은, 집은 또 다른 큰 산이었고, 내가 버는 수입은 작고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또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