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파이팅을-
전염병이 돌고 있다. 사실 신종플루나 메르스 때도 크게 와닿는 것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점심시간에 식당 TV의 뉴스로 처음 본 코로나바이러스(그때는 ㅇㅇ폐렴이었던 것 같다.)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고, 한두 달 띄엄띄엄 뉴스에서 보이다가 사라질 이름이겠거니 생각했다. 무서운 속도로 퍼진 바이러스는 우리 동네까지 점령을 하였고, 매일 지나던 출퇴근길까지 두려워지게 만들었다.
신규 확진자의 수가 하늘을 찌르던 그때의 거리는 눈에 띄게 휑해졌고, 여행은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렸다. 1년에 한 번씩은 무조건 여행을 가던 내가 전생의 삶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보게 되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범죄라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있다. 코와 입을 가린 채 서로 닿지 않기 위해, 마주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기 바쁘다. 상대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 어쩌다 폐를 끼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되어버린 것인지 모를 일이다. 코로나 사태가 유난히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는 병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재난문자에 내가 갔던 곳이 있을까 봐 마음 졸이고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안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 더 괴롭게 느껴진다. 우스갯소리로 '2020년은 버린 해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버려야 끝이 날까. 매일 아침 정기 레터처럼 오는 확진자 수 브리핑도 이제는 무뎌졌고, 전쟁터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는 이 시간을 버텨내고 있음에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만큼 시간도 멈추면 좋으련만.
누군가는 어제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고 오늘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도 하고, 격상된 그날 결혼식을 며칠 앞둔 누군가는 좌절하기도 한다. 온 마음으로 아끼는 친구의 결혼식에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석을 못하게 되고, 휴대폰 속 작은 영상으로 결혼식을 보기도 한다. 팬데믹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음을 전할 길을 가로막는 코로나를 피해 마음이 통할 샛길을 만들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한 소년이 22년 5월에는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하다 하다 이런 걸 믿네 내가' 싶지만 또 조금은 기대해본다. 아주 당연했었던 일상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으로 온 그 말은 그때까지 버티게 해 줄 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