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프랑스어 시간이었다. 계절을 칭하는 명사를 하나씩 알려주며 여름은 에떼, 관사를 붙이면 레떼가 된다고 동그란 발음을 뱉었던 선생님은 예뻤다. 예쁜 선생님이 알려 준 단어는 또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레떼. 다른 단어는 잊었지만 여름만은 기억하고 있다.
운동장 수돗가에서 서로에게 물을 뿌려 흙바닥에 그림자 같은 그림을 그리고, 물에 젖은 교복이 금세 말랐던 그 시절 레떼. 해가 바뀔 때 마다 다른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여름이 오면 한번 쯤 나는 프랑스어 선생님의 동그란 발음을 흉내 내며 레떼, 라고 말해 본다. 친구들과 폭우로 길이 끊어진 동해로 떠난 여름에도, 폴라포의 얼음을 후두둑 뱉어내던 신림9동의 여름에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으로, 한강으로 쏘다녔던 여름에도,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셨던 여름에도, 아빠를 잃고 초록 식물을 끊임없이 베란다에 들였던 여름에도. 그러면 여름은 그대로 여름이 된다. 매년 몇 십년만에 찾아 온 더위, 역대급 태풍과 폭우라고 뉴스에서 떠들곤 하지만, 여전히 매미가 울고 그늘을 찾아 들어가게 만드는 계절. 얼음이 가득 든 커피와 물 알갱이가 송글송글 맺힌 컵을 연신 닦아내며 떨어진 물기를 주워담는 계절.
나무에 붙은 매미가 귀를 때릴 듯 울고, 장맛비가 속절없이 내리고 방바닥은 끈적끈적한 여름이 좋다. 밤 사위가 길고 넓은 계절, 낮에 밀려 뒤늦게 등장한 밤이 두렵지 않은 계절, 맨살에 닿는 바람이 시원한 계절, 별과 달과 비행기의 불빛이 진하고 선명한 계절. 한껏 모아진 적운형 구름이 차례로 줄을 서고 저녁 노을의 주홍과 보라가 산 너머에 오래 걸친 계절. 모든 것이 투명하고 빛나고 진해지는 계절이어서 일까. 여름은 고백하기 좋은 계절이다. 온도가 높을 수록 냄새도 소리도 속도를 높이는 계절이라서 비누향도 나즈막하게 뱉은 단어들도 조금 더 빠르게 도착한다. 좋아한다는 말, 네가 좋다는 말.
누구에게라도, 무엇이어도 여름에 하는 고백은 솥에서 금방 꺼낸 감자처럼 포슬포슬하다. 한 알 한 알 떼어 먹는 옥수수 알갱이 처럼 낱말 하나 마다 식감이 있고, 입안에 꽉 들어차는 오이 처럼 싱겁기도, 두 눈을 감게 만드는 자두 만큼 새콤하기도 하다. 맥주캔 밖으로 새어나온 물방울을 꼭 쥐고 하는 고백은 뜨거워진 손을 대신 잡아 준다. 떨리는 목소리를 한 모금 삼키고 말한다.
네가 좋다는 말.
그래서일까. 여름 밤 공원에는 함께 걷는 이들이 많다. 서로의 손과 손 사이에 덜 식은 여름 바람이 오고 간다. 아직 잡지 못해 스치는 손과 손 사이, 혹은 잡고 있는 손과 손 안에 존재하는 것은 수박 속살 같은 달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