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하지 않기
토요일.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둘째는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고 막내는 거실에서 게임 중입니다.
주방으로 가서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라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침 개수도 3개입니다.
아빠 : 라면 먹을까?
둘째 : 네에. 라면 먹어요.
아빠 : 그럼 네가 물 좀 올려줄래? 부탁 좀 하자
둘째 : 네에. 제가 올릴게요.
평소 같으면 ‘나도 먹을래’라고 하던 막내가 왠지 조용합니다. 평소 같지 않습니다. 라면 먹자는 말을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 : 너도 먹을 거지?
막내 : 아니. 나는 안 먹어
아빠 : 안 먹는다고?
막내 : 응. 나는 이제 밀가루는 안 먹을 거야. 살 빼야 해.
아빠 : 진짜? 밀가루를 안 먹는다고?
막내 : 진짜야. 그러니까 아빠도 나한테 밀가루를 권하지 말아 줘
막내의 말을 듣고 있던 둘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합니다.
둘째 : 또 뻥치고 있네
막내 ; 아니거든. 진짜 밀가루 안 먹을 거거든
둘째 ; 너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브이콘(과자 종류) 먹었잖아.
막내 : 브이콘은 밀가루가 아니야. 봉지에 보면 옥수수 80%라고 적혀있거든.
둘째 ; 그럼 감자깡은?
막내 : 감자깡은 감자로 만든 거지. 그러니까 감자깡이잖아
둘째 ;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막내 : 말이 되거든
둘째 : 어제저녁에는 아이스크림도 먹더구먼.
막내 : 아이스크림이 밀가루야? 아니잖아.
둘째 : 너 밀가루 안 먹는 이유가 살 빼는 거 아니야? 그럼 그런 것도 안 먹어야지
막내 : 어떻게 사람이 한꺼번에 다 끊냐? 하나씩 끊어야지.
둘째 : 완전 아전인수 구만
막내 : 안되니까 또 어려운 말하네.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거든. 그러니까 수준에 맞게 대화를 하는 게 어때?
둘째 : 저걸 그냥! 여하튼 밀가루 먹나 안 먹나 보자. 먹기만 해 봐라!
막내 : 안 먹을 거거든. 절대로! 그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라고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중에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질 익은 라면을 식탁에 두고 김치를 꺼내서 둘째와 먹기 시작했습니다.
먹는 모습을 흘깃흘깃 쳐다보던 막내가 식탁으로 오더니 제 귀에 대고 한 마디 합니다.
막내 : 아빠. 국물은 괜찮지 않을까? 국물은 밀가루가 아니잖아. 국물 좀 남겨줘. 밥 말아먹게
아빠 : 차라리 밀가루를 먹어라.
막내 : 안돼! 한 번 마음을 먹었으면 지켜야지.
아빠 ; 마음먹었다고 다 지켜야 되는 건 아니야.
막내 :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고 잘라야지
아빠 : 그래..... 훌륭하다..... 파이팅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은 막내가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나갑니다. 둘째는 오늘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모양입니다.
놀러 나간 막내가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막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 언제 올 거야?
막내 : 조금만 더 놀다가
아빠 : 저녁은?
막내 : 먹었어. 친구 엄마가 짬뽕시켜줘서...... 아니 밥해줘서.... 그러니까 먹었어
아빠 : 그러니까 짬뽕을 먹었다는 거지?
막내 : 음..... 어쩔 수 없이.... 형한테는 말하면 안 돼!
아빠 : 음.... 지금 스피커 폰이고 옆에 형 있어.
막내 :.................... 끊어......
막내의 변명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핑계를 대며 짬뽕 먹은 것을 합리화할까요? 지금 둘째가 벼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하겠다고 다짐을 한들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부모도 어렵고 자녀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저 그냥 웃으며 봐주면 됩니다. 안되면 다시 시작하면 되고, 다른 대안을 찾으면 됩니다. 막내가 밀가루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거지요.
조만간 막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막내는 분명히 피자를 추가할 겁니다. 좋은 맘으로 시켜서 같이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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