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시골로 터전을 옮기신 아버지께서 집 뒷마당을 텃밭으로 가꾸어 고구마, 양파, 옥수수, 대파, 상추 등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심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께서는 철마다 채소를 심으십니다.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심으십니다.
심어 놓은 야채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저에게 전화를 해서 가져가라고 강요하십니다. 귀찮아서 안 가져가면 가져갈 때까지 전화를 하십니다.
‘이번 주 시골 좀 내려와라. 양파가 다 익었더라. 와서 캐 가라’
‘와서 상추 좀 따가라. 저러다가 다 버리겠다’
‘쑥 갓이 잘 영글었다. 와서 따 가라. 가져가서 애들 좀 먹여라’
‘배추가 다 썩겠다. 얼른 와서 가져가라’
여유가 있을 때는 아버지께서 키운 채소들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분주할 때는 아버지의 전화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가 짧다면 짧은 거리이지만 마음이 분주할 때는 엄두를 내기 힘듭니다.
시간을 내서 어렵게 시골에 가서 야채를 가져오며 조심스럽게 아버지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이런 거 심지 마세요. 그냥 사 먹으면 돼요. 아버지도 힘들고 저도 오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심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이런 저의 부탁은 일주일을 못 갑니다. 다시 전화를 하십니다.
‘부추가 많이 열렸다. 와서 잘라 가라. 잘라서 전 부쳐서 애들하고 먹어라. 맛있을 거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먹든 신경을 안 쓰시면 좋겠는데 아버지는 그게 안 되나 봅니다.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닌데 저를 좀 놔두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당장이라도 ‘제발 저 좀 귀찮게 하지 마시고, 그냥 좀 놔두세요. 이런 거 좀 심지 마시고요. 이런 거 안 심어도 다 먹어요. 그냥 아버지나 드세요’라고 하고 싶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들이 자녀의 인생에 너무 간섭해서 힘들어하는 자녀를 만나게 됩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더 이상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고 부모님 자신 인생을 살았으면 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계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삶을 자식들이 인정을 못 할 뿐이고요.
저희 아버지가 저를 위해 텃밭에 야채를 심고 키우는 것이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제가 인정을 못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사실 부모님은 지금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계신 겁니다. 그런 부모를 향해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간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부모를 향해 자신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면, 자식도 부모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각자가 현재 살아가는 그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말입니다.
아버지는 텃밭에 야채를 키워 저에게 주는 자신의 삶을 살고, 저는 제 나름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겠지요.
그래서 ‘제발 저 좀 귀찮게 하지 마시고, 그냥 좀 놔두세요. 이런 거 좀 심지 마시고요. 이런 거 안 심어도 다 먹어요. 그냥 아버지나 드세요’라는 생각이 들어도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당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살아가는 당신의 삶에 아들이라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삶이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아버지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삶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그나저나 가을이 가까워지면 텃밭에는 더 많은 것들이 올라올 텐데.... 단단히 각오를 해야겠습니다.
#신성철행복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