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 한라산 자락의 구불한 2차선 도로를 달려 회사로 간다. 동네의 당근밭과 용눈이오름을 지나면 삼나무 사이로 뻗은 숲길이 나타난다. 곧 길 옆으로 초원과 들판이 나타난다. 어떤 날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노루를 보고 전국의 직장인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출근길을 가졌다는 감상에 빠진다. 하얀 서리 내린 들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트랙터를 보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젖기도 한다. 날씨는 마치 구내식당 메뉴처럼 맑은 날, 흐린 날, 안개 낀 날,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이 불규칙적으로 반복한다. 그런 변덕스런 날씨 덕에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출퇴근길이 지루하지가 않다.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것이 회사로 가는 길이지만, 거의 매일 아침마다 나는 갈 회사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돌아갈 집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이유 중 절반을 차지했던 가혹한 출퇴근길이 평화로운 시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자영업, 청소노동자, 건축자재 영업사원, 공장노동자, 백수를 거쳐 다시 원래 분야의 직장인이 된 나에게는 직장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매일 아침 여러 감정을 품게 하는 중산간의 구불한 길을 달려 회사에 도착하면 한국의 여느 직장인과 별다르지 않는 시간이 시작된다. 높은 지대에 자리한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사옥의 4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눈부시게 예쁘지만, 직장에서의 일이라는 게 딱히 낭만적일 건 없다. 이곳이 제아무리 제주일지라도.
12년 전, 다시는 직장생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제주로 왔다. 책장에서 전공서적을 빼서 버리고, 외장하드 속 기술자료들도 모조리 지웠다. 그리곤 10여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어 제주의 한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시 직장인이 되니 나는 전 사회적으로 퍼져 있는 꼰대론의 주인공인 4050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성세대를 위축되게 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하기도 하다.
직장생활의 기쁨과 슬픔이야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겠지만 글로 적어 내놓기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다. 더러워도 먹고 사려니 참고 다녀야 하는 곳, 로또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곳. 그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직장이라고 불리는 애증의 존재에 대한 변하지 않는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그 안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또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도 한다.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존재가치를 인정받지만, 또 별 일 안 하고도 매달 월급을 받는 것이 직장인이기도 하니까.
40대 중반이 되어 다시 다니게 된 직장에서 나는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영혼까지 저당 잡힌 듯 인생의 주도권을 직장에 넘겨줄 생각은 없다. 나는 직장이 소중하지만, 회사 역시 나의 능력이 간절히 필요해야 한다.
직장에서 중장년이 갖춰야 할 경쟁력은 무엇일까? 회사에서 내가 빠지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오해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할까? 많은 정보들을 독점하여 나 아니면 아무도 그 일을 못하게 해야 할까? 무능력자의 생존전략으로는 알맞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유효기간이 짧은 전략이다. 그런 전략으로는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지금부턴 중장년이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야기 하고 싶다. 능력있는 중장년 인재가 되어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계몽주의적 자기계발법을 설파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다. 그저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중장년 직장인의 고군분투 정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