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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May 21. 2023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중년의 전략은?

나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 한라산 자락의 구불한 2차선 도로를 달려 회사로 간다. 동네의 당근밭과 용눈이오름을 지나면 삼나무 사이로 뻗은 숲길이 나타난다. 곧 길 옆으로 초원과 들판이 나타난다. 어떤 날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노루를 보고 전국의 직장인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출근길을 가졌다는 감상에 빠진다. 하얀 서리 내린 들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트랙터를 보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젖기도 한다. 날씨는 마치 구내식당 메뉴처럼 맑은 날, 흐린 날, 안개 낀 날,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이 불규칙적으로 반복한다. 그런 변덕스런 날씨 덕에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출퇴근길이 지루하지가 않다.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것이 회사로 가는 길이지만, 거의 매일 아침마다 나는 갈 회사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돌아갈 집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이유 중 절반을 차지했던 가혹한 출퇴근길이 평화로운 시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자영업, 청소노동자, 건축자재 영업사원, 공장노동자, 백수를 거쳐 다시 원래 분야의 직장인이 된 나에게는 직장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매일 아침 여러 감정을 품게 하는 중산간의 구불한 길을 달려 회사에 도착하면 한국의 여느 직장인과 별다르지 않는 시간이 시작된다. 높은 지대에 자리한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사옥의 4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눈부시게 예쁘지만, 직장에서의 일이라는 게 딱히 낭만적일 건 없다. 이곳이 제아무리 제주일지라도.


12년 전, 다시는 직장생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제주로 왔다. 책장에서 전공서적을 빼서 버리고, 외장하드 속 기술자료들도 모조리 지웠다. 그리곤 10여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어 제주의 한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시 직장인이 되니 나는 전 사회적으로 퍼져 있는 꼰대론의 주인공인 4050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성세대를 위축되게 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하기도 하다.


직장생활의 기쁨과 슬픔이야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겠지만 글로 적어 내놓기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다. 더러워도 먹고 사려니 참고 다녀야 하는 곳, 로또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곳. 그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직장이라고 불리는 애증의 존재에 대한 변하지 않는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그 안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또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도 한다.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존재가치를 인정받지만, 또 별 일 안 하고도 매달 월급을 받는 것이 직장인이기도 하니까.


40대 중반이 되어 다시 다니게 된 직장에서 나는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영혼까지 저당 잡힌 듯 인생의 주도권을 직장에 넘겨줄 생각은 없다. 나는 직장이 소중하지만, 회사 역시 나의 능력이 간절히 필요해야 한다.


직장에서 중장년이 갖춰야 할 경쟁력은 무엇일까? 회사에서 내가 빠지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오해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할까? 많은 정보들을 독점하여 나 아니면 아무도 그 일을 못하게 해야 할까? 무능력자의 생존전략으로는 알맞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유효기간이 짧은 전략이다. 그런 전략으로는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지금부턴 중장년이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야기 하고 싶다. 능력있는 중장년 인재가 되어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계몽주의적 자기계발법을 설파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다. 그저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중장년 직장인의 고군분투 정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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