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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May 13. 2023

운명의 집과 세 분의 부동산 사장님 2

< 귀인은 타이밍 > 83년생의 집



그렇게 구한 네 번째 집에서 5년 가까이 살았는데, 5년 차가 되니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년생 아이들은 폭발적인 에너지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열다섯 평 빌라는 정말 좁았다. 콘크리트로 된 개미 굴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구를 초대할 수도 없었다. 공황장애가 발병한 곳이 이곳이었다. 하지만 별 수가 있나, 이 집도 대출로 간신히 산 것을. '열심히 벌어보자.' 하며 어린이집 하원 시간부터는 친정엄마께 아이들을 부탁하고 틈틈이 일을 하러 다녔다. 벌다 보면 모이고, 모이면 옮길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하는 생각과 씨름하며.



공황도 생기고 그렇게 우울했으면 OO빌라에서의 생활은 불행했는가?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한결같이 나를 아끼며 본인의 힘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헌신하는 남편을 보며 나도 힘을 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나에겐 좁지만 아이들에겐 부족함이 없을 이 공간에서의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웃으면 우리도 행복했다. 웃었다. 힘들지만 이런 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며 서로 다독였다. 그래도 현실의 무게가 무거울 땐 짓눌려 울기도 했다. 답답해했고 이 공간이 아니면 더 행복할 거라벗어나고 싶어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는 감정이다. 아이들은 종종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아, OO 빌라 그립다, 좋았는데 그치!"


그러면 부부는 아련해진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생각난다.






시간이 흘러 흘러 2020년 초. 나의 귀에 각각 다른 사람이 말한 두 마디가 확 꽂혔다.



"꽃님아, 이 동네는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에는 좋은 곳이 아니야. 이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너무 없어. 멀고. 집값이 비슷해도 우리 동네는 학교가 얼마나 많은데."


얼마 후에 그 언니네 집에 가보았다. 저렴한 전셋집인데 집이 엄청나게 넓었다.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넓은 거실, 넓은 주방! 꿈의 평수였다.


"꽃님아, 이 동네는 집이 다 이렇게 싸고 넓어!"


귀가 팔랑팔랑했다.



또 다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니까 내가 알려주는 데. 곧 집값 폭등한다. 지금 이사 안 하면 너 여기 못 벗어나. 그게 말이야 지금 정부가 어쩌고 저쩌고, 내 금융권 친구들은 지금이 어쩌고 저쩌고,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이 친구는 내 공황을 의지의 문제라며 용비교 아래에서 그냥 간 친구이지만, 틀린 말을 하는 법은 없었다. 얼마 후 나는 그녀를 '귀인 인가?' 생각하게 된다.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 옆 동네가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에 좋다는 말과 지금이 아니면 너는 이사하지 못할 거라는 말. 그 말들은 지긋지긋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게 움직일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살고 있는 빌라를 먼저 처분해야 한다는 것. 우리 빌라의 공식적인 스펙은 이랬다.


1991년에 지은 건물.

역세권 아님 (역까지 버스로 네 정거장)

주차장 없음 (골목이라 인근에도 없음)

엘리베이터 없는 3층.

물탱크를 사용함

주택 담보대출 금액이 엄청 낮음 (다른 대출이나 현금으로 사야 함)


인터넷 거래 사이트에도 글을 올리고, 동네 부동산 여기저기에 집을 내놓았지만 어려웠다. 우선 오래된 빌라를 구매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평수가 작아서 자식들 다 키워 독립시킨 어르신들이나 아이가 없는 부부가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노인 가구는 계단이 싫으시고 젊은 가구는 주차장이 없어서 안 되겠다고 했다.  


악조건이었다. 물건을 올리고 몇 달이 지나도 제대로 된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하루, 공갈빵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잠깐 사무실로 와보라고.


가보니 공갈빵 사장님이 월세를 보러 오신 분께 우리 집을 소개하고 계셨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동시에 나의 인간 됨의 깊이는 겨우 이 정도였구나 느꼈다. 전세를 찾던 내게 매매를 권한 마카롱 사장님을 그렇게 얄밉다고 원망했으면서, 월세를 보러 온 우리 이모 나이대의 여자분께 우리 집을 매매하라고 소개해 주는 공갈빵 사장님이 고맙고, 제발 거래야 이루어져라! 를 외치는 내 모습을 보며.


이모 같은 여자분께는 차가 없었고, 청년이 된 아들이랑 둘이 살고 계신다고 했다. 화장실은 물론 보일러와 샤시까지 올 수리한 우리 집이 생각보다 마음에 드셨던 것 같았다.


  

깔끔해보이지만 물건이 차면 정말 좁은 집

 

 

1억 4천에 산 집을 1억 2천에 내놓은 데다가 집을 싹 고치는데 천만 원이 들었으니 우리에겐 손해고 사실 분에겐 이 가격대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집의 KB 시세가 너무 낮아서, 낮은 금액의 40프로 밖에 안 되는 주택 담보대출이 문제. 1억 가까이 현금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돈이 아예 없다고 하셨다. 몇 달 만에 구매 의향이 있는 분을 만났는데 너무 안타까웠다.

다시 이런 분을 만나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공갈빵 사장님이 결국 이 거래를 성사시키셨다. 포기하시려던 여자분을 아주 강하게 설득해서 여자분의 친오빠께서 나서서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얼굴을 붉혔던 공갈빵 사장님이 이런 도움을 주실 줄이야. 게다가 이 타이밍은, 운명의 집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귀인은 귀한 사람이라기보단 귀한 타이밍에 나타나 나는 사람인가 보다.



그런데 감사함을 너무 많이 표현했던 걸까, 공갈빵 사장님은 고마우면 이사할 집도 본인에게 구해야 한다며 자꾸 아파트 매매를 권하셨다. 언감생심 아파트 매매를 할 형편은 안되고 전세자금 대출만 믿고 움직이려는 것이었기에,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아파트 매매는 진짜 못해요. 전세로 갈 거예요. 제가 알아서 구할게요 사장님!"




그리고 그전에 언니가 말했던 옆 동네를 찾아가 배회하다가 소금빵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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