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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May 22. 2023

영끌로 집을 산 이야기

< 운명의 집과 세 분의 부동산 사장님 끝 > 83년생의 집



소금빵 사장님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두 가지 마음이 엎치락 뒷치락했다.


'돈도 없으면서 어떻게 하려고 아파트를 덥석 사겠대.'


'설마. 전세 놓으려던 물건을 갑자기 팔려고 하시겠어?'


'진짜 판다고 하시면? 오빠한테 뭐라고 말해...'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며, 어느 쪽을 더 바래야 좋은 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위잉!'


"얘기가 잘 됐어요. 애기 엄마가 원하는 값에 팔기로 했으니까 이따 오세요."


"네...... 고맙습니다!"




형편에 맞지 않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소금빵 사장님이 어떤 말로 집주인 분을 설득했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간단히는 '외국에 나가기 전에 속 편히 처분하고 가시라'고 하셨다는데 집주인 분은 금액도 내가 제시한 3억 중반에 맞춰 주셨다. 본 계약을 하러 사무실에 갔다. 친정엄마와 나, 집주인 분과 그분의 친정엄마이신 할머니, 소금빵 사장님과 직원분 이렇게 여섯 사람이 마주 앉게 되었다. 다과를 하며 계약서를 펼치는데 할머니께서 이의를 제기하셨다. 



"아유 나 안되겠어, 500만 원을 더 받아야겠어."


소금빵 사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어린아이 달래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 벌써 이 가격으로 약속이 됐어요."라고 하셨다.


"에이, 그럼 못 팔지. 나 안 팔어!"


집주인 분은 '우리 엄마 못 말려' 하는 표정으로 "그냥 계속하세요." 하며 웃고 계셨고 소금빵 사장님은 이런 말을 이미 많이 들어본 듯 서류를 넘기며 같은 말을 다시 하려고 했다. 그때 사장님의 말을 막은 건 나였다.



"사장님, 할머니 말씀대로 500만 원 더 드리는 걸로 할게요."



할머니의 말씀이 아무 위력이 없는 '아쉬운 마음의 표현'이라는 걸 알았기에 순간 사무실 안에 있는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할머니의 얼굴에 삽시간에 미소가 번지더니 딸을 향해 당당한 표정을 지으셨다. 눈에서 광채가 나며 허리가 더 꼿꼿해지셨다. '봐라, 내가 니 엄마다! 봤지?'하는 표정이셨다. 반대로 친정 엄마는 '너 왜 그래?'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소금빵 사장님과 옆의 직원분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표정은 다르지만 눈으로는 같은 질문을 하시는 것 같아서 얼른 대답했다.

  

"에고, 안 그러면 할머니께서 두고두고 오래오래 오늘 '못 받은 500만 원'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맞죠, 할머니?!"


할머니께서 파안대소하셨다. 할머니 마음에 500만 원이라는 돈이 맺힐까 봐 겁이 났다. 아까 농담처럼 500만 원 이야기를 꺼내실 때 할머니의 목소리가 살짝 잠길 듯이 떨렸던 것을 느꼈다. 우리는 농으로 받아들여도 할머니께는 자존심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꺼낸 힘든 말, 오래오래 아쉬움으로 남을 말이 될 것 같았다.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가게를 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시고 뜯기셨다고 한다.(할머니 표현) 젊을 때는 오히려 큰 금액들 앞에서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하셨던 할머니께서 연로해지실수록 최근 못 받은 작은 금액을 떠올리며 속상해하셨다. 시간이 많으시니 생각할 시간도 많으실 텐데, 500만 원이 한이 될까 그게 싫었다.



소금빵 사장님이 크게 웃었다. "아이고, 복받을 거예요!"



워낙 느긋하고 말 수가 없으신 집주인 여자분은 웃기만 했다. 말해놓고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 뭉클해졌는데, 오히려 할머니는 금방 웃음을 감추고 당당한 표정을 지으셨다. 딸 나이 50이 넘어도, 나보다 똑똑해졌어도 내 딸은 내가 지킨다, 하는 강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 앞에 내가 지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다음은 슬프게도 '영끌'의 시간이었다.


대출의 큰 기둥 격인 주택 담보 대출의 상한액이 KB 시세의 40%까지인데, 이 오래된 아파트의 30평형은 다른 평형에 비해 세대 수가 많지 않아 거래가 거의 없었다. 최근 거래가 2018년으로 KB 시세는 2억 대였다. 2억 대의 40%만 주택 담보 대출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60%를 어디서 구한다?'


살며 처음으로 친정엄마께 돈을 부탁했다. 물론 이 문장을 엄마가 보면 "와, 기가 막혀 코가 막혀!" 하실 거다. 학원비, 등록금, 결혼 때 종잣돈 등 내가 너한테 준게 얼만데! 하시겠지만, 생활비는 대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해결했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한 건 처음이었다.  


다달이 나갈 원리금은 철저히 우리가 낸다는 조건으로, 친정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대출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엄마는 '근로소득'이 없어서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나머지는 전부 남편 명의의 '신용대출'로 채웠다. (이 신용대출 2022년 금리 인상 시기가 되면서 우리를 패닉에 빠지게 했다. 이땐 정말 상상도 못했다.)




'돈 한 푼이 없이 100프로 대출로 집을 사네요.'라고 은행 직원이 친정 엄마께 말했다고 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랬다. 변명이겠지만 처음부터 빚을 안고 힘들게 시작했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돈을 모으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 대목을 말할 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비슷하게 시작했어도 아끼고 모아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기에.



"꽃님아, 매달 나가야 할 원리금이 얼만지 알아? 우리가 여기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오빠! 걱정 마. 내가 열심히 벌어볼게. 버티다 안되면 팔자!"


그런데, 바로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거래한 2020년 6월 직후부터 뉴스에 '집값'이라는 키워드가 잦아지더니 '폭등'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우리 '구'는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곳 중 하나라서 집값의 오름폭이 크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집을 산 직후부터 호가가 순식간에 1억, 2억 오르다가 3억까지 뛰게 되었다. (*지금은 원상태로 내려왔습니다.)



너무 좋았지만, 전세 놓으려던 집을 소금빵 사장님 설득에 팔게 된 전 집주인 분은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생각했다. 할머니께서 더 달라고 하셨던 500만 원을 안 드렸으면 할머니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에 두고두고 후회로 맺힐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1주택이라 '깔고 앉아서 살아갈 집이고 옮기게 되어도 다른 집들도 올랐으므로' 들뜨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그땐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빠, OO이가 나한테 그렇게 집을 사라고 했는데, 걔가 귀인이었나 봐! 이제 다 잘 되려나 봐."


"우리 너무 고생한다고, 이제 좀 쉬라고 이런 기회를 주셨나봐"


"대운이 들어왔나?"



미신을 믿지 않아서 거리낄 것 없이 아홉수에 결혼을 한 내가, 어느새 말로만 듣던 대운이라는 것이 왔나 보다! 하는 착각을 하게 됐다.




그게 함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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