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십편 May 29. 2023

남편의 희망 회로

< 당신이 반짝거렸으면 좋겠다. > 83년생의 집






남편은 한 직장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다. 긴 시간을 버티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다. 중간중간 고비도 많았다. 최근에는 '이게 마지막일 것 같은' 승진을 했는데, 승진으로 오른 급여 딱 그만큼 건보료와 세금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명세서를 본 그의 허탈한 표정은 슬픈 드라마의 엔딩 같았다. 그는 그 표정으로 직급이 바뀌어 책임은 늘어났는데, 벌어서 어딘가에 빼앗기는 기분이 되었다고 했다.


남편의 급여보다는 남편의 표정과 심경이 궁금하고 조마조마한 나는 승진이 그에게 위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한동안 그를 씩씩하게 해 줄 동력이 될 줄 알았는데. 


게다가 더 큰 고비가 찾아왔다. 14년 동안 몸담은 부서에서 완전히 다른 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IT 쪽 연구원인 남편은 14년간 해 온 일을 내려놓고,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전혀 다른 분야의 프로그램 개발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갑'사 직원으로서만 일을 하다가 처음으로 '을'사 입장이 된 건 덤이다. 두 회사의 협업에서 이쪽이 하청이 된 것이다. 지난 4월, 전학을 간 학생처럼 짐을 챙겨 근무 건물을 이동한 남편의 표정은 나날이 어두워졌다.


"같이 일하는 협업사는 24시간 일을 하나 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 대."


과연 남편이 과감하게 칼퇴 한 날,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


"아.. 네, 네."


남편은 팀원의 부탁대로 본인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불러주며 그것을 무언의 압박으로 느꼈다.


빡빡하기로 유명한 그 회사의 업무 스타일에 맞춘 이 팀의 분위기(오전에는 여유롭다가 퇴근할 때가 되면 일이 시작되는 분위기)에 남편은 질색을 했다. 그뿐이랴, 함께 지내던 동료들과 헤어졌으니 밥을 먹을 때에도 잠시 쉴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시기일 것이다. 안쓰러웠다.


러던 어느 날이었다.


"꽃님아, 나랑 같이 좀 걸을래?"


하필 그날 오전에 한참을 걷고 와서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지만 흔쾌히 함께 집을 나섰다. 걷고 걷다 하천으로 내려갔을 때, 남편의 말문이 본격적으로 트였다. (평소에도 해비 토커의 면모가 있었지만, 이날은 정말이지 많고 무겁고 진지했다.)


(옮긴 사업장에 대한 긴~ 얘기를 한바탕 하고 난 후)




"내가 만약 이 부담을 다 내려놓고 편하게 다닌다면 근무 평가에서 'C'를 맞을 테고, 'C'가 세 번이면 희망퇴직 대상자가 될 거야."


-끄덕끄덕


"그래서 퇴직금을 계산해 봤는데, 대략 얼마 얼마쯤 되더라고?"


-오, 생각보다 많네? (추임새)


"어, 들어봐. 그 퇴직금이면 지금 회사 대출이 얼마 얼마 남았는데, 얼마는 내년에 끝나고 얼마는 얼마 밖에 안 남았으니까 회사 대출을 갚고 신용대출도 좀 갚을 수 있어."


-어, 생각보다 다행이네!


"어, 게다가 희망퇴직이면 몇 년 치 연봉을 받으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빚은 퉁칠 수 있는 거지!"


-와, 진짜 좋다!


"대신 돈을 벌어야 하니 꽃님이 니가 3년 안에 자리를 잡아야 돼."




오, 드디어 내가 말할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오빠, 그거 좋다. 딱 3년만 C 맞으면서 대충 다녀. B도 A도 안돼. 꼭  C를 받아. 막 근무 시간에 엎드려서 자고 눈치 보지 말고 퇴근해."


-그래도 잠을 자는 건 좀 그렇지


"지금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며. 그래야 몇 년 치 연봉을 받는다며!"


"오빠. 내가 먹여 살릴게! 글 쓰는 게 직업이 되면, 꼭 서울에만 있을 필요도 없잖?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살자."


-눈이 번쩍!


"들어봐 오빠. 나 웹소설 1화 드디어 썼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고지가 눈앞이야. 거의 다 왔어. 오빤 이제 살림만 해. 애들 매니저해. 안 그래도 딸들이라 다 키워도 불안했는데, 오빠가 쫓아다니면서 몰래몰래 경호도 하면 좋겠네."


-글썽


모든 말혼신의 기운을 꾹꾹 눌러 담아 힘주어 얘기했다.



물론 웹소설 1화를 썼지만 아직 99화를 더 써야만 한다는 것, 데뷔의 길이 아마 험난할 거라는 것, 고지가 눈앞인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것이 마음에 기지만.



남편은 꼭 12년 전에도


"우리 단칸방부터 시작하지만, 내가 작가가 돼서 오빠 행복하게 해 줄 게."


라는 말에 속아 결혼을 했는데,  또. 또,



침울했던 얼굴이 환해져 있었다. 



"아, 어떻게 하면 C를 받지?" (싱글벙글)


상상만 해도 좋은가보다.




물론 그는 대충 일할 사람이 아니다.


"제발 일하지 마!"라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남편은 공치사할 수 있는 자기 업무만 하기보다는 팀원들의 업무를 두루 도우며 일을 해서 일한 것보다 평가가 낮을 때도 있었다. 독보적으로 빛나려 자기 일만 챙기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그럼 오빠도 그렇게 해. 광을 팔아!"라고 했더니


"드러나지 않아도 나는 계속  팀들 다 챙기며 갈 거야."라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가서 적응도 해야 하고 일도 새롭게 배워야 하는데, 그동안 일해온 것과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내려니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야망도 없고,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집에서 살림을 하고 싶다는 남편. 처음엔 이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진짜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번아웃이 왔으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할까. 텅 비워 본 적 없이 달려온 그에게 이제 다 내려놔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만큼 했으니 이제 당신은 좀 쉬어. 좋아하는 살림 실컷 하면서, 아이들 보면서. 물론 그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그 일이 좋다니 내가 양보할게.'  



빚을 높이도 쌓아 놓고 한 푼이라도 더 벌 생각은 안 하고 이런 생각만 하는 게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친정 엄마가 우리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 부자 되긴 글러 먹은 성격의 사람끼리 잘 만났다는 생각도 한다.



어쨌든 이제는 진짜 제대로 노력 해보려고 3월 문예 창작과에 편입했고, 과제 겸해서 드디어 웹소설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과목의 교수님께서 중간고사 과제에 100점을 주셨고, 이것을 남편에게 '절대평가', '점수를 후하게 주시는 교수님'이라는 사실은 쏙 빼놓고 자랑을 했다.




사이 남편의 희망 회로 풀가동이 되면서, 얼굴이 다시 전구처럼 반짝! 밝아지게 됐다. 아무 의미 없고 실현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만약 로또 1등 되면....' 같은 대화이지만 그 대화에서라도 힘을 받고 싶은 남편과 위로 할 말이 IF 밖에 없는 나.

시간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돌리는 희망 회로를 멈추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금쪽이 같은 며느리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