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이웃님들, 구독자님들 모두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여러모로 뜨거웠던 여름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와서 갑자기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니고요,
오늘 아르바이트 합격(?)문자를 받고 다음 주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서, 브런치에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먼저 <숨 막히는 도돌이표>에서 글을 더 열심히 쓰라고 응원해 주셨던 이웃님, 작가님들! 그날의 응원 덕에 저 정말 글쓰기로 여름을 불태웠습니다. 아이들 방학이겠다, 이웃님들이 눈물 펑펑 나게 응원해 주셨겠다. 마음 놓고, 죄책감 내려놓고, 열심히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어떻게 썼냐 하면, 다니고 있는 사이버대의 여름 특강을 신청해서 생애 처음으로 엽편 소설 두 편, 단편 소설 한 편을 완성했습니다. 교수님께 칭찬도 받고요. (칭찬 안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만)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웹소설 특강도 들어서 웹소설도 진도를 더 나아갔고요. 어제가 특강 마지막 날이었답니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구한 것은 <숨 막히는 도돌이표>를 쓸 때처럼 글쓰기 중단하고 전일제로 200만 원 300만 원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네 시간 하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입니다. 응원을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간 깨달은 몇 가지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제가 운이 좋아서 소설가로 등단을 하게 되어도, 또 운이 좋아서 웹소설을 연재하게 되어도 남편이 회사를 관두고 제가 혼자 빚 갚으며 우리 집을 먹여 살릴 만큼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것!
제가 현실감각이 이렇게 떨어집니다. 등단을 하거나 웹소설 작가로 데뷔를 하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동안 고생한 남편 먹여 살릴 수 있을 줄 알았죠. 하지만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며 조금씩 귀동냥을 하며 현실을 파악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얼마 전 소규모 북토크에서 뵙게 된 박준 시인님께서 책 한 권을 팔았을 때 작가의 손에 들어오는 액수를 알려주셨어요! 물론 시는 더욱 어려운 분야이지만 어쨌든 문학은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 열정으로 하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제야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남편은 제가 이전에 <남편의 희망회로>를 잔뜩 돌려놓은 바람에 막 나가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너무 소진된 남편, 그동안 하던 일과 전혀 다른 부서로 가게 된 남편은 이제 공공연 하게 '낮잠 자는 날'로 이용되고 있는 '재택근무'를 금요일마다 당당하게 써서 주 4일 근무를 만들어 냈습니다. (본인 말로는 본인만 그러는 게 아니라지만) 지켜보는 저는, 담대한 척하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일 수밖에요.
지난주의 어느 하루는 회사를 가려고 양치질을 하다가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저에게 제 공황약을 나눠 달라며, 오늘은 도저히 회사에 못 가겠다고. 소파에 앉더니 망부석이 되어 굳어버렸습니다. 제가 명랑하게 썼던
<남편의 희망회로>는 아주 무시무시한 글이었던 겁니다.
남편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그날만큼은 도저히 함께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재택을 써서 금요일부터 토요일, 일요일을 붙어 있었는데, 월요일까지 나흘을 회사를 안 가고 부대낄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혀서 얼른
"나는 한 글자라도 더 쓰고 올게!" 하며 노트북과 이것저것 챙겨 밖으로 도망 나갔어요.
밖을 걸어 다니며 두 가지 생각이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가장들, 1년이라도 더 버티다 나오려고 수모를 견디는 가장들도 많은데 남들이 부러워하고 노동 강도가 세지도 않은(다른 회사에 비교하면) 회사를 다니며 왜 저렇게 못 견뎌할까!'
'그래서 외벌이 가정의 아내인 나를 이렇게 몸 둘 바를 모르게 미안하게 만드는 걸까!'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우울했고, 여전히 예민하고, 공황장애도 앓고, 직장도 없는 나를 '이해'가 아니라 '보통 사람 보듯이' 바라보며 그 자체의 나를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고 멋지다 해줬던 남편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남편도 나도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부분이 있구나. 남편이 나를 포용하고 살았듯이 나도 이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신은 하지 말자.
그렇게 활시위를 벗어난 활처럼, 남편은 몇 개월 후 실시 되는 희망퇴직을 향해 돌진하고 있고요,
두 번째 깨달음, 저는 괜찮아진 게 아니었습니다.
여러 글에서 몇 번, '공황장애를 앓았었고'라고 했고 약을 끊은 지 2년 가까이 되어가기에 공황장애가 완치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브런치에 글을 쓰며 제가 얼마나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졌었어요.
(제 필명 구십편은 구십편 쓰겠다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시편 90편 이랍니다.)
그런데 두 가지 요인
1.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폐소'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것 (가장 취약한 게 차량에 갇힌 상황)
2. 웹소설로 한몫 벌어보겠다고, (하하하) 아이들 여름 방학이라고 아르바이트를 다 멈추고
한 달에 200만 원씩을 장기대출로 돌려서 막고 있는 상황.
으로 인해서 인지, 얼마 전 극심한 공황 발작이 와서 새벽에 응급실에 갔었어요.
공황이 재발했고, 다시 병원에 가고 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7-8월, 글을 쓰는 마음은 즐거웠는데 경제적인 압박과 공포는 견디기가 힘들었나 봐요. 그리고 촬영장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도.
공황장애가 재발한 것과 남편이 회사 자꾸 안 가는 것 등등 브런치에 이 가정의 민낯을 올리고 싶었지만, 여러 편의 글 마감과 카드 값의 압박으로 답답함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상황이었어서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응원하기 제도가 생겼는데, 저에게도 초록 배지가 생겼어요.
저는 브런치를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치유를 얻고, 소통하는 이웃님 작가님들이 생겨서 너무 감사하지만, 그리고 제도의 긍정적인 면을 응원하지만. 특별히 "저의 경우" 주제가 <83년생 가장이 이끄는 가정의 어려움(빈곤)과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과정 (동지들에게 위안을)> 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연재해서 소정의 후원을 받는 다면 제 가난을 팔아 돈을 버는 것 같다는 거부감과 부담, 수치 때문에 무척 심란해졌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만입니다! 저는 브런치를 응원합니다 ㅎㅎㅎ)
그래서 심란해지고, 뭔가 부끄럽기도 해서 계정을 확 지워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INFP 특징, 끝을 못 맺고, 변덕이 심해서 리셋 버튼을 자주 누르거든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 구독자님들에게 계속 힘들지만 살아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은 마음, 이웃 작가님들 잃기 싫은 마음.
저의 구독자가 급증했던 시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 제가 놀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 구독자님 중에 관심작가가 '구십편' 한 명 밖에 없는 구독자님이 많았어요. (그때 당시)
여러 관심 작가를 두고 두루두루 글을 읽으시는 게 보통인데, 어떻게 관심작가가 나 밖에 없지? 생각했어요. (너무 황송하면서도 궁금했던)
천천히 생각해 보니 다음 메인에 노출이 되었을 때 제 글을 보고, 원래 브런치를 안 하시는 데 로그인하시고 구독을 누르신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랬던 분이 꽤 계셨었어요. 그때 그 마음, 그게 혼자만의 약속이 되었어요.
나처럼 아이 키우며 빚 갚으며 사는 게 너무 힘든 신 분들의 공감이 아닐까?
저는 제가 힘든 모습을 보고 '쟤보다는 내가 낫네' 하고 위안을 얻으시는 것도 좋습니다.
(실제로 너무 사는 게 바쁘셔서 막상 보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그래서 가끔씩 계정을 확 없애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을 억누르며 지금까지 잘 두었습니다. ^^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땐, 여기 출판 관계자가 많다니까 잘하면 책을 낼 수 있을 거야! 였는데
글을 쓰면서 나의 고통, 나의 사건들이 우주에서 제일 고통스럽고 가혹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드디어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이제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자!로 나아가면서
브런치 글을 엮어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는 상황이에요. 힘들고 긴 시간을 더 쌓고 쌓아서 나중에 엮을 거예요.
어쨌든 다행인 건, 아무나 응원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꾸준히 연재하고 브런치 팀에 선정이 되는 분들만 그러한 것 같으니 저는 안심하고ㅡ
선정되지 않도록 불규칙적으로 ㅎㅎㅎ 연재될만한 글은 아니도록
미꾸라지처럼 브런치팀의 애정 어린 시선을 피해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마음 편하게 돈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계속 오전 파트타임 자리로 한의원, 카페, 사무실 등 다양한 곳에 지원을 했는 데 아무 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오늘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마트 안에 있는 다이ㅅ 매장입니다. 평소 종종 가는 마트 안에 있는 아주 작은 다이O라서 일이 너무 힘들지는 않겠지? 하고 지원했는데, 토요일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확장공사" 중인 거예요. 어마어마하게 커지니까 직원을 더 구하는 거였더라고요.
면접을 보러 직원 출입구를 지나 창고의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따라 가장 안쪽에 들어가니 공기가 후끈하고, 사람 어깨너비만 한 폭의 벽 앞에 어깨너비만 한 책상, 책상만 한 컴퓨터,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선풍기 앞 의자에 직원 한 분이 쉬고 계셨는데 제가 면접을 보러 들어가는 바람에 쉬다가 나가셔야 했어요.
"힘든 일 안 해봤을 거 같은데 하실 수 있겠어요? 여기는 뭐 다 짐 나르는 일이에요."
"그럼요, 제가 아이 둘을 키웠는대요."
"그렇지, 엄마는 못 할 게 없지. 나도 이렇게 말랐지만 15년째 여기서 일하잖아요. 인연이 되면 월요일에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면접을 봤었더랬어요.
어떤 일을 하던 아이들 학교 있는 시간 동안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돈을 벌면서 글을 써야, 공황이 심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빚 폭탄 카운트다운도 늦출 수가 있겠지요!)
온 가족 감기 걸리고 아이들 폐렴도 걸리고 (애들 아픈 게 글 마감에 미친 나 때문인 거 같아서 울면서 베란다 청소하고 대청소하고) 공황으로 새벽 응급실도 가고, 그 와중에 시 서평도 쓰고 소설 세 편을 완성한 아주아주 장렬한 여름이었습니다.
(이웃 작가님들 글에 놀러 가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이야기들이 끝나니 83년 생의 집이 이야기가 뚝 끊긴 거 같아서, 가끔씩 그동안 제가 했던 '아르바이트'들을 올려 볼 게요. 불규칙하게, 브런치팀의 애정 어린 시선을 잘 피해서!
청명하고 아름다운 가을, 더 행복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