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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Sep 24. 2023

오전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서!

< 전업주부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1 > 83년 생의 집


결혼 전 기업 교육팀에서 근무했던 경력은 단절되었고, 이렇다 할 능력이 없는 나는 최저 임금을 적용받는 시급 노동자다. 아이들을 키우며 4년간 다녔던 전집 회사의 영업 업무를 제외하고는 늘 그랬다. (심지어 그동안 해본 재택 아르바이트들은 손이 느려 최저 시급도 나오지 않았다.)


외벌이로는 버티기 힘든 지금 상황에서 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겠지만, 아이들 때문에 저녁까지 일하는 게 쉽지 않다.


최저시급으로 벌 수 있는 돈은, 내가 일할 동안 8세, 9세 자매를 어딘가에 맡길 돌봄 비용을 제하면 조촐한 액수가 된다. 학원을 촘촘하게 보내려 해도 두 배이니 수 십만 원, 친정 엄마께 본격적으로 부탁드리자면 양심껏 용돈을 챙겨드려야 하고. (지금까지는 불규칙적으로 부탁드리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공차 블랙 밀크티' 같은 소소한 간식 선물로 버텼다.)


능력자 친구들은 회사에서 이제 한 직급씩 하고 있기에, 친정엄마께 부탁드리고 서운하시않을 만큼 용돈을 챙겨 드린다. 학원은 예체능에 영어, 수학을 더해 골고루 보내며, 주말에 듬뿍 사랑을 주는 식으로 모두가 제법 만족스러운 육아를 하고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걸 따라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친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낳고도 직장을 계속 다니며 힘들었던 모습,  지나쳐간 수많은 고비들, 고생으로 피부가 다 뒤집어지고 친정부모님과 티격태격 갈등하며 울면서도 다음 날엔 출근을 해야 했던 노력을 보아 왔기에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녀와 모든 그녀들의 커리어를 존경한다.)



그러니까, 꼭 집어 단순직으로 일해야 하는 '나의 경우'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을 비용을 들여 맡겨 가며 저녁까지 일하는 것이 실익은 적으면서 잃게 되는 가치가 더 많은 상황이라는 것.



또 한 가지, 내겐 글을 쓸 시간과 배우고 익힐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계가 턱걸이인데 무얼 대단한 글을 쓰겠다고 그러느냐, 또 그놈의 꿈 얘기냐, 브런치에 매일 꾸준히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나중에 여유 생기면'으로 미루지 않을 거다. 즐겁게 소설을 쓰고 있고, 쓰고 싶은 주제도 줄줄이 리스트업 되어 있다. 원고가 나의 앉은키를 넘어설 때까지, 하찮은 글이어도 결국 양질전화가 일어날 때까지 할 거다. 설령 남들이 알아볼 만큼 성공하지 못해도 좋다. 내 아이들은 엄마가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거울처럼 비추며 자연히 배울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실패해도, 실패에 이르기까지 장렬하게 싸웠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유산이 될 거라는 확신에 실패도 두렵지 않다. 실패해도 최소한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이 될 테니 노력하는 나는 무적이다. 그저 노력만 하면 되니까.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가 십 년 후의 내 모습이라고 한다면, 최저 시급 노동에만 모든 것을 바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있는 오전 시간 동안만 일하기. <오전 파트타임>이라는 조건 하나를 사수하는 대신 나머지 모든 조건에 대한 내적 장벽을 허물었다. 찾아보니 이런 곳들이 있었다.


「교육청 구직란의 급식 배식, 세척, 학교 청소, 방앗간 쇼핑몰에서 포장 아르바이트, 의류 쇼핑몰 전산 아르바이트, 젓갈과 반찬 가게, 한의원, 카페, 편의점, 콜센터, 배달」  


교육청 구직란을 꾸준히 체크하는 동시에 첫 번째로 뒤적였던 알바O 사이트에는 오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라고는 콜센터와 금융업, 물류 아르바이트 일색이어서, 오전은 일자리가 없는 줄로 알고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다른 알바OO 사이트에는 오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꽤 있었다. 게다가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3시 정도 시간대 일을 한 번 열람하고 나면 아래쪽에 비슷한 시간대 일들이 주욱 나열 되었다. 아주 유용했다.


시간만 맞으면 무조건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게 하진 못했다. 겁도 나고. 가까운 중학교에서 배식과 세척 일을 하려고 했을 땐 다른 초등학교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언니가 전화로 말렸다.


"너 병난다. 하지 마. 그리고 세척보다는 배식이 나은데, 그동안 코로나 방역 소독 하던 분들이 배식 자리로 옮겨 가면서 지금은 일자리가 없을 거야. 좀 기다려봐."

그렇게 말해 준 언니에게 고마웠다. 체력이 약한 것을 스스로 알아서, 누군가 말려주었으면 했던 것 같다.


방앗간 쇼핑몰 소분 포장 일은 시간이 너무 좋아 당장 지원하려고 했지만, <학력무관, 성별무관, 모든 것 무관>인 그곳에서 제시한 단 한 가지 조건 '꼼꼼하고 깔끔한'에서 아주 심하게 동요되었다. 미숫가루나 참기름을 소분하다가 바닥에 줄줄 흘리는 모습이 훤하게 상상이 가고......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시간대가 좋고 주 5일 인것도 마음에 들어 킵 해두었다.


그러던 와중, <학력 무관 연봉 9천만 원>이라는 글을 보았는데 그 장소가 지금 우리 동네에 짓고 있는 아주 유명한 대형 빌딩이어서 '아, 비싼 건물인 만큼 수수료가 높은 것인가? 나도 영업해 봤는데 해볼까?'.....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싶어서 절친한 동생들에게 이야기했다가 따끔하게 혼났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똑박사 딸기가 직장 근처로 독립을 해보겠다고 오피스텔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이사 경력이 많은 레몬이와 내가 동행 했었다. 모델 하우스에서 우리에게 오피스텔 평형과 금액 안내를 하던 (후에는 거절 했는데도 너무 전화를 끈질기게 하셨다던) 그 분이 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였다.


  

  

그 후로도 계속, 돈 걱정에 숨이 막힐 때마다 사이트를 뒤적였다.



<반찬 가게 공고>



반찬 가게는 오후 3시까지 주 6일 일하는 데 급여가 180만 원 가까웠다.

'그래, 여기서라도 일해야지.'

마침 집에 있던 남편에게 운동할 겸 '사전 답사'를 같이 가자고 했더니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반찬 가게에서 일한다고? 할 수 있겠어?"

"응, 왜 못해?"

머릿속엔 몇 달 전 종영한, 내가 엑스트라로 출연도 했던 드라마 '일타 스캔들' 속 반찬 가게가 그려졌다.


하지만 유서 깊은 전통 시장 안에 있는 그 반찬 가게에는,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우리 시어머니가 제사 준비하실 때 꺼내는 빨간색, 파란색 대형 플라스틱 소쿠리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바닥에 놓여 있는 갈색 고무 대야도 엄청나게 크고... 입이 딱 벌어졌다. 일 년에 두 번 치르기도 힘든 명절 음식들을 매일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내 표정을 봤는지 남편이 말했다.


"공고만 봐도 딱 그려지지 않아? 꼭 와서 봐야 알겠어?"

(엇. 딸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봐야 알아?')

"아... 오빠. 여기서 일하면 매일 명절일 거 같아."

"그니까, 반찬 가게라며 그게 상상이 안 가서 꼭 이렇게 와서 봐야 알겠냐고."

"봐야 알지, 안 보고 어떻게 알아......" (나는 일타스캔들 반찬 가게 같은 곳인 줄......)



그다음 방앗간은, 미숫가루와 참기름 앞에 도무지 꼼꼼하고 깔끔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

쇼핑몰과 한의원은 간절했는데 나를 버렸다. 탈락.

   



시간도 딱 좋고, 주 5일인 것도, 4대보험 되는 것도 좋은데.


초보 가능, 주부 가능인데 도대체 왜 저를 버리신 겁니까.



한의원도 시간이 정말 좋은데 아쉽게 탈락. 경력이 없으니 인정합니다!


이제 남은 곳은 편의점, 커피숍인데 우리 동네 편의점은 밤샘 근무 시간대만 뽑고 있었고, 커피숍들은 일수가 적어서 급여가 너무 적었다.

  






그리고 단 한 곳 연락 온 곳이 사진에는 없지만 다이O 매장이었다. 면접 합격도 했고, 출근 통보를 받자마자

<근황을 담은 편지>에 글을 쓰기도 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엄마, 합격을 축하해!"라고 했지만 나는 입단속을 했다. 보조출연 아르바이트 하는 것도 각자 자기 반에 "우리 엄마 배우다! 우영우에 나온 배우다!"라고 소문을 내서 담임선생님까지 '배우이신가요?' 물어보시는 상황에 이르렀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후줄근하게 입고 안경 쓰고 돌아다닐 때 만나는 동네 엄마들이 그렇게 물어볼 땐 몸이 오징어처럼 오드라드는 것 같았다.


"얘들아, 엄마는 너희가 좋아하는 다이O 매장에서 무슨 일을 하냐면, 하루 종일 상자 나르는 일만 할 거야. 그래서 엄마는 솔직히 너희가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엄마, 창피해?"


"아니, 창피한 건 아닌데 상자 나르는 일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싫거든. 너희는 엄마가 뭘 좋아하고 뭐가 되고 싶은지 알지?"


"응!"


"근데, 다른 사람들에겐 그걸 다 설명할 수가 없잖아. 엄마가 이 일 하나로 너희들 친구 부모님들에게 기억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막 말하고 그러지는 마~ 친한 친구면 말해도 되고."


그 사이 제법 큰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했다.

"근데 아린이한테는 말해도 돼?!"

했지만 말이다.


'다음주부터'로 첫 출근 날짜를 넉넉히 받아 둔 상태에서 마지막일 평일 오전의 여유를 애틋한 마음으로 보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딱 하루 쉴 수 있는 날이 평일이어야만 해서 교회에 갈 수 없게 된다는 것. 나이롱 신자에서 열심히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멀어지게 된다는 것.


'아, 주 6일도 너무 힘들 것 같고, 주일에 쉬는 일이면 좋겠는데.'


그래서 한 번 더 검색을 했고, 새로운 공고를 발견했다.

다음 주에 면접을 보기로 하자마자, 다이ㅇ에 바로 문자를 드렸다. 날짜가 많이 남아 있어서 인지

"못 온다고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답장이 왔다.




이때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너무나 절묘한, 그야말로 나에게 맞춤인 일자리를 만나게 되었다. 





- 다음 편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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