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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책장 Aug 16. 2021

편지로 쓰는 서평, 혹은 그냥 편지

[책 읽는 파이] 슬릭,이랑, 괄호가 많은 편지


N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가볍게 시작했던 내 카톡을 보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괜찮냐고 물어보던 N야. 나는 그때 너의 연락이 편지와도 같다고 생각했어. 앞에 '~에게'를 붙이고 뒤에 '~가'를 더하면 그게 편지지 뭐. 너를 생각하는 만큼 길게 답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벌서 2주가 지났네.

오늘 읽은 책은 슬릭과 이랑의 <괄호가 많은 편지>야. 문학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된 글이 어느새 책으로 엮여 내 손으로 들어왔네. 읽으며 N 네 생각이 많이 났어. 근 몇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건 너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편지를 권하더라. 그럼 어떡해. 써야지. 쓰고 싶은데.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분들께도 권하고 싶어집니다. 편지를 씁시다. 친한 친구에게 하루 동안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가 편지를 써봅시다. 저와 슬릭처럼 2주 동안 말을 참았다가 편지를 써봐도 좋겠네요. 저는 앞으로 필사를 좋아하는 슬릭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내볼까 합니다. 손편지는 키보드로 치는 편지와 달리 또 새로운 피로감이 있겠지만, 그래도 쓰고 싶습니다.
살아서, 편지를 쓰고, 만나서 전해주기로 합시다.

___슬릭&이랑, 괄호가 많은 편지, 214쪽




만나서 전해주지는 못하겠네. 나는 이 글을 독서계정에 올리고, 그 링크를 너에게 보낼 생각이거든. 아마 넌 무수한 'ㅋㅋㅋㅋㅋ'를 보낸 뒤 또 정성스럽게 답해주겠지. 나에게는 넘치게 다정한 너라서. 나도 그만큼의 다정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어. 감정을 풀어내기 어려운 사람이지만, 그래도 노력해볼게.

북카페 문학살롱 초고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 좋아하던 아몬드 맥주는 사라졌지만 블랑에 아몬드 리큐어를 더해 주셔서 아껴 마시는 중이야.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왼쪽에는 방금 읽은 책 <괄호가 많은 편지가 있고, 오른쪽에 네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네. 그러고 보니 널 만난 지 얼마나 됐더라. 족히 몇 달은 된 것 같은데.

그사이에 내 생활에는 큰 변화가 생겼어. 평일이면 7시에 일어나 20분 만에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0시가 훌쩍 넘어 다소 외로워하지. 주말에는 느지막이 오후 1시에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고,  너를 조금 귀찮게 하다가 아무 계획 없이 읽던 책만 챙겨서 어디로든 나가. (우리는 어디로든 가지) 새벽에 너와 연락하고 오후 2시에 일어나 5시에 약속을 잡던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 둘 중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네. 너는 어때? 잘살고 있니. 남에게 보이는 삶이 아니라 너의 몸과 마음이 느끼는 삶이 궁금해.

요즘 나는 잘 몰랐던 나에 대해서, 혹은 변해버린 나에 대해서 의아해하고 있어.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내향성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를 만나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지. 하고 싶은 일과 되고 싶은 이상향도 뚜렷했고. 그런데 최근 알게 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더라. 집에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혼자 있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있고 싶어 하고,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출했어. 나는 이런데, 너는 어떨까. 같이 가출한 마음 좀 찾아줄래?

너는 부담될까 봐, 걱정시킬까 봐 힘들다는 얘기를 잘 못 하겠다고 했었지. 이미 했던 얘기지만 너의 이야기는 내게 단 한 번도 부담인 적이 없었어. 그러니 언제든 얘기해도 괜찮아.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든, 혹은 너조차 잘 모르겠는 네 마음속 이야기든. 둘이서 고민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 나도 똑같이 너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질 테니까. 같이 던지고 같이 주워보자.

슬릭과 이랑의 편지를 읽으며 너와 내 편지가 생각났어. 남들이 보기에 우리 둘의 연락은 편지가 아닌 그저 그런 텍스트에 불과할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편지'라고 이름 붙여볼래. 우리는 살아서 편지를 쓰고, 편지 속에 애정과 다정을 불어넣고, 주고받고 있으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한 뒤 '아, 오그라드네'라고 말하면 너는 오그라든다는 말 하지 말라고, 그 말에 죽은 감정이 너무 많다고 답했었지.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말에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렀던 적이 많았어. 오그라든다고 할까 봐, 허세 떤다고 할까 봐. 그냥 내 감정인데 뭐가 어때서 참았던 걸까. 그래도 너와의 대화 이후로 나는 남들이 오그라든다고 할 법한 말들을 언제 어디서든 풀어놓고 있어. 예를 들면, 너를 많이 애정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들.

2021년, 나는 정말 많이 변했고, 앞으로도 많이 변하겠지. 그래도 이 편지를 쓰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너에게 애정과 다정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그런 내 마음을 너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고, 다시 전해주는 이런 마음.

우리 살아서, 편지를 쓰고, 만나서 전해주기로 하자. 못 한 말은 만나서 할게.

2021.08.16.

마감이 다가오는 문학살롱 초고에서.

추신. 받고 싶다는 마음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버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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