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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책장 May 18. 2023

어떤 눈송이처럼 평범해서 특별한 이야기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화려하게 빛나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도 꺼졌을 즈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홉살의 내가 하바나 클럽 앞에서 우두커니 맞고 있었던 눈이, 그뒤로 수십번 맞닥뜨렸지만 한번도 시시하지 않았던 그 작고 특별한 것들이.
___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하바나 눈사람 클럽 중



#크리스마스타일 #김금희

- 어떤 눈송이처럼 평범해서 특별한 이야기


계정을 없앨까 말까 고민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비활성화했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읽지 않았다. 책이 지긋지긋했고 인생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치웠더니 계속 생각났다. 3주 해외여행 가는 캐리어에 기어코 책 한 권을 넣을 만큼. 어쨌거나 이번 생은 책과 책으로 만드는 이야기에서 빠져나오기는 그른 것 같다. 그렇다면 최대한 잘해야지.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유튜브 숏츠에 길든 뇌를 다독여가며 독서 머리를 겨우 살려가던 중, 서울 동물영화제에서 알게 된 언니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파이도 분명 재밌게 읽을 것 같다는 손 편지와 함께. 오랜만에 받은 책 선물이라 평소보다 더 공들여 읽었다. 언니의 예상이 적중했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들어 굳어버린 머리에 카페인과 알코올을 주입하며 힘겹게 글을 쓴다.


뭐라고 이 책을 소개해야 좋을까 고민하다 '특별하지 않아 더 특별한 이야기'라는 문장이 툭 튀어나왔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각 단편이 가끔은 희미하게 가끔은 진하게 엮여 있는 연작 소설로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평범하게 연결된다. 갈등도 평범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만한 보통의 고민과 고통과 고난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평범하다던가, 보통이라든가 하는 수식어는 멀리서 봤을 때나 그렇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두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빛난다. 그래서일까, 까마득하게 넓은 세상에서 내 괴로움은 너무 작고 흔해 더 아플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래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연작소설은 같은 인물도 다르게 보여주는 힘이 유달리 강하다. 한 챕터에서는 마음 깊숙이 들어왔던 주인공이, 다른 챕터에서 다른 인물의 눈으로 보면 얄밉기 그지없다. 당연하게도. 그래서 읽다 보면 현실에 치여 좁아진 마음이 살짝 넓어진다. 내가 그렇듯 남에게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왠지 모르게 쓸쓸해지는 크리스마스에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타일>


선물 고마워 언니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그저 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입을 열어 지금과는 다른 숨을 쉬어보고 싶게 하는 사람. 그런데 옥주에 관해서는 과거도 현재도 알지 못해서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사람.

___<월계동 옥주> 중에서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___<첫눈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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