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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Apr 06. 2024

스타트업의 금쪽이들 2

내가 핵심 인력이라는 착각을 하는 과몰입형

스타트업은 언제나 시간과 자원이 부족합니다. 인원이 30명 미만일 땐 대부분이 일당백, 아니 일당이백을 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30명 미만 스타트업에 조인합니다. 사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수년간 그렇게 일하던 사람들이 기능에 따라 팀을 나누고 팀원을 충원해서 조직을 늘리기로 합니다. 들어온 투자금으로 팀원을 뽑아서 지금까지 하던 일을 더 빠르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밤을 새우며 일을 했던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감개무량한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입니다.






한번도 팀을 리드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초기 멤버인데다 프로덕트를 가장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팀 리드가 되었습니다. 사실 리드가 되고 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보입니다. 일단 팀원을 뽑았습니다. 열심히 온보딩을 합니다. 프로덕트에 대해 이것 저것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부족하고 문제가 여기 저기서 터집니다. 작은 규모로 운영할 땐 괜찮았던 부분들이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버티지 못하는 것입니다. 널빤지로 대어놔도 괜찮았던 데크에 사람들이 많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군데군데 구멍이 나버립니다. 빨리 새로운 널빤지로 덧대던지 아니면 콘크리트로 확실하게 기반을 강화해야합니다.


그러다보니 새로 들어온 팀원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고 일을 같이 하기보다는 일단 빨리 사고 수습에 나서야할 것 같아  몸이 먼저 움직입니다. 기존에 하던 일도 일당백이었는데 이걸 팀원과 나누자니 팀원이 프로덕트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려 답답합니다. 그럴 바에 내가 야근을 좀 더 해서 일을 혼자 해버립니다. 그 와중에 터지는 사고도 수습하느라 바쁩니다. (혹은 본인만 항상 바쁘다고 착각합니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는데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회사에 늦게까지 남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팀원들이 퇴근한 저녁,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알게모르게 책임감도 생기지만 동시에 오만함도 생깁니다. 이렇게 '이 회사는 내가 없으면 안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는 금쪽이들이 생깁니다.


이 회사의 이모저모를 다 아는 사람도 나이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나이고, 무엇보다 시간과 노력을 이렇게 많이 쏟고 있으니 자신이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부끄럽지만 저도 한때 그런 착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회사 일에 매여 있으면서 개인의 삶이 사라집니다. 개인의 삶이 사라지니 이제 일을 하지 않을 때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점점 잊어버리게 되어 쉬는 시간에도 강박적으로 사내 메신저를 쳐다봅니다. 일과 자신을 분리하여 재충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일에 과몰입하게 됩니다. 별로 큰일도 아닌데 감정적으로 폭발하기도 합니다.


회사 동료들과의 작은 충돌 하나하나가 굉장히 크게 다가옵니다. 신경질적으로 바뀝니다. 회사 동료와 충돌이 생기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회사에 자기만큼 헌신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일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지만,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아집이 생깁니다. 본인만큼 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도 없고 이 일에 본인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러다 회사에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월급명세서를 들여다봅니다. 매일같이 회사를 위해 헌신했으나 시간당 급여를 계산해보면 최저시급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회사인데, 나 같은 핵심 인력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내 위로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은 인력이 들어옵니다. 나보다 회사 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보다 연봉이 높습니다. 회사의 핵심 인력인 나를 승진 시켜줄 줄 알았더니 회사에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 회사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주변에 새로 들어온 경력직 흉을 봅니다. 그런 식으로 회사에 들어오는 새로운 인력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게 조직 내에 균열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만함에 빠져있던 금쪽이들은 회사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분노와 우울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이 가련한 금쪽이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회사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저 업무의 RnR를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았을 뿐이고, 자율적으로 일을 하게끔 했을 뿐이죠. 야근 수당도 지급하지 않았고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것도 지킬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자율에 맡겼을 뿐입니다.






혹시 내가 이런 금쪽이의 모습과 닮아있다면 일단은 무조건 칼출근 칼퇴근을 하시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합니다. 나와 회사를 반드시 분리해야합니다. 그렇게하면 회사에서의 내 위치가 흔들릴까봐 불안하다고요? 그정도로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걱정된다면 당신은 이미 핵심 인력이 아닙니다. 회사는 점점 규모가 갖춰지면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절대 핵심 인력 몇명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또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대체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오히려 정말 대체 불가능한 인력은 조직 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금쪽이들은 사람들이 당연히 피하게 됩니다.


누구나 일을 하다보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나와 일과의 경계를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경계를 없애버리면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본인의 마음이 괴로우면 그 괴로움은 반드시 주변에 전염됩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금쪽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 금쪽이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과감하게 일과의 분리를 처방해주세요.


특히 내 조직에 이런 금쪽이 증세가 보이는 부하 직원이 있다면 더욱 일과 개인의 삶의 분리를 신경써주시는 게 좋습니다. 누구든지 개인의 삶에서 충분한 재충전이 된 상태로 회사에 출근해야 능률도 오르는 법입니다. 회사에 과몰입하여 일하는 직원은 언젠가는 사내 문화를 해치고 자폭하는 폭탄이 됩니다.


일을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 남들보다 눈에 띄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적절히 잘 다스리면서 동료들과 함께 성과를 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롱런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금쪽이들이 생산되는 것이죠. 혹시라도 잠시 금쪽이가 되었더라도, 독서와 자기성찰, 그리고 주변의 조언에 귀기울이는 자세만 있다면 느려도 서서히 자신의 삶과 일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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