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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Oct 18. 2021

미라클모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녁형 인간의 변명

나라고 왜 미라클모닝에 도전하기로 결심해보지 않았을까. 작심삼일 전공자로서 거의 삼 일에 한 번 꼴로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게 내 취미이자 특기인 것을. 특히나 템플스테이에서 새벽 기상을 며칠 간 경험한 이후에는 일찍 일어나는 일이 꽤 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까짓 거! 나도 도전해보자, 미라클모닝!


첫도전은 출근 전 108배하기였다. 비록 신심 깊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108배를 하며 점점 퇴화 중이신 허벅지 근육도 단련하고 어수선한 마음도 단련한다면, 크, 그야말로 완벽한 아침의 기적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일상의 관성은 템플스테이에서 얻은 깨달음보다 훨씬 강렬했다. 처음 얼마간은 그래도 정확히 108번의 절을 했다. 하지만 점점 100배, 80배, 50배로 나 자신과의 타협에 들어가더니 어느 날은 절을 하다가 엎드린 자세 그대로 다시 잠들어 버렸다. 아, 도로아미티불 관세음보살.


다음 도전은 글쓰기였다. 늘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 말하면서도 가장 뒤로 밀리는 일인 글쓰기. 허벅지 근육 만들기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 보자고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깨끗이 실패했다. 이번엔 삼 일까지도 못 갔다. 절을 하다가 잠드는 것보다 텅 빈 워드프로세서 화면을 노려보다 잠드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다는 걸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 역시 글은 밤에 잘 써진다.


나도 알고 있다. 분명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걸. 날마다 일정이 유동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저녁 시간과 달리 아침 시간은 고정적으로 쓸 수 있어서 매일 어떤 일을 습관 들여 하는 데는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냥 아침의 기적 없이 살아가고 있다. 출근 전 십 분의 잠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주말 아침의 늦잠은 포기할 수 없이 달콤하다. 대신에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요즘은 아주 간단하게라도 꼭 아침을 챙겨먹는다. 어제 먹고 남은 찬밥 반 공기와 국물이라도 전자렌지에 따뜻하게 돌려 먹고, 그럴 시간이 안 되면 얼려둔 떡 한 덩이라도 데워서 차 한 잔과 함께 먹는다. 때로는 토마토나 바나나를 곁들이기도 한다.


이 잠깐의 아침 식사가 나에게는 충분히 미라클모닝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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