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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Oct 11. 2021

나는 이제 노래를 들으며 걷지 않는다

이어폰과의 작별

귀에 늘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빠에게 선물로 받은 나의 첫 mp3플레이어는 세월이 흘러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음원사이트도 소리바다에서 유튜브로, 유선이어폰 또한 헤드폰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무선이어폰으로 바뀌었지만 길을 걸으며 늘 음악을 듣는 습관만은 변치 않았다. 한두 곡을 들을 수 있는 거리이든 앨범 몇 개는 들을 수 있는 거리이든 일단 집을 나서면 바로 귀에 이어폰부터 꽂았다.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습관 때문에 실수도 많이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릴 곳을 놓치기도 하고, 누가 나를 불렀는데 못 듣고 지나쳐서 오해를 사기도 하고, 심지어 귀를 울리는 음악소리에 정신이 팔려 ATM기에서 카드만 챙기고 돈은 안 챙겨서 그냥 나오는 등의 대형실수도 몇 번 저질렀다.


이 정도면 내가 굉장한 음악광이거나 적어도 음악에 얼마간의 조예가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던 인디 가수가 뒤늦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때면 어쩐지 먼저 원석을 알아본 것 같아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 가수가 조금만 음색을 바꾸면 이게 누구 목소리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둔감한 귀를 지니고 있다. 한때 락 음악을 꽤 들었는데도 여전히 기타와 베이스 소리를 잘 헷갈리고, 인트로만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 척척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늘 노래를 들으며 다녔을까.


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시작은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이동 시간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뭔가 허전하고 시간의 낭비처럼 느껴졌었다. 어쩌면 지독했던 입시 공부의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고3 시절 내내 등하교길이나 심지어 복도를 걸어갈 때도 주머니에 암기장을 넣고 무언가 중얼중얼 외우며 다녔던 습관이 무언가를 그토록 암기할 필요가 없어진 이후에도 시간감각 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있으면 내가 길거리에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음악 감상이라는 취미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 어쩐지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낸 기분이 들었다. 마치 외워지든 아니든 무작정 암기장을 들여다보던 그 때처럼. 물론 음악이 내 주변의 소음과 나 사이에 한 겹 막을 둘러싸주는 느낌이 매혹적이기도 했다.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기는 했으니까.


그 오랜 습관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퇴근길에 언덕을 타박타박 오르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나서 찾아 들으려고 가방을 뒤져보니 이어폰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가방에 이어폰을 마지막으로 챙겨 넣은 게 언제더라. 허 참, 도무지 기억이 안 났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물론 여기저기 쏘다닐 일이 많았던 이십대 시절에 비해 요즘은 워낙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이동 시간 자체가 짧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길을 걸으며 노래를 걸은 지가 한참 되었다. 심지어 산책을 할 때도 요즘은 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면 한참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이 잠잠해지면 그냥 멍하니 걷기만 하다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또 생각을 한다.


이제야 늘 쫓기듯 느껴지던 시간감각이 내 저질 체력에 맞게 느슨해진 것일까. 아니면 이젠 음악 대신 각종 일상의 고민거리들이 머리를 꽉 채워서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틈조차 없어진 걸까.


언젠가 이런저런 생각조차 없이 그냥, 그냥 걷기만 하는 날이 온다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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