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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Oct 05. 2021

조회수 로또를 맞고 글쓰기가 싫어졌다

뭘 해도 안 되는 날 있잖아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침부터 실수로 뭘 깨뜨리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긴장하게 된다. 이건 분명 뒤에 이어질 불행한 사건들의 복선이거나 현재 주인공의 인생이 이토록 위태롭다는 걸 보여주는 은유이니까. 그래서 오늘 아침 아끼던 유리잔이 깨지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뭔가 싸한데...


그랬다. 뭘 해도 안 되는 날.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된장찌개를 끓여 먹으려고 사두었던 채소를 꺼내보니 며칠 사이에 물러 있고, 대충 밑반찬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넷플릭스라도 보려고 하는데 인터넷 연결이 갑자기 불안정해지고, 인터넷 문제를 해결하고 뒤늦게 엄마한테 선물하려고 쇼핑몰에서 골라뒀던 옷을 결제하려 하니 품절이 되어 있고, 빨래나 하려고 베란다 문을 여니 옆집이나 아랫집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열린 창문 너머로 매캐한 냄새가 물씬 풍겨 오고, 황급히 창문을 닫고 올려다 본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 얼굴을 거둘 줄 몰랐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다. 하루 사이에 비관론자가 된 나는 캄캄해진 하늘보다 더 우중충한 얼굴로 거실에 앉아 하루를 되새기고 있었고,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사실 작가님의 새 글을 기다린다는 브런치의 친절한 알람을 꿋꿋하게 무시해 온 지 네 달째였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어졌을까. 음, 어쩌면 왜 그 동안 글쓰기가 싫어졌는지를 되짚어 보는 게 맞겠다. 네 달쯤 전 나는 조회수 로또를 맞았다. 우연히 이 매거진의 글 하나가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조회수가 1000, 2000, 3000을 넘어가더니 순식간에 6000을 돌파하였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누군가 내 몸속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온 몸의 신경세포가 아드레날린의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찍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뭔가 잘 풀리는 날이었다. 그 날은 브런치 조회수만 로또가 터진 게 아니라 직장에서 하는 일도 칭찬을 들었다. 그런 하루를 맞이하고 나면 남은 인생이 모두 그런 날들로만 채워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건 착각이다. 기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던 마음 상태는 얼마 안 가 곤두박질쳤다. 이런 행운과 환희의 순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겪어야 출간 작가가 되는 걸까? 열 번, 스무 번? 그보다 더 많이? 이번 글을 지난 번 그 글보다 더 공들여 썼는데 왜 조회수는 더 낮을까? 분명 힘을 빼고 글 쓰는 연습을 해보자고 이 매거진을 시작했는데 자꾸 힘이 들어갔다. 즐겁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이 겹치면서 글 쓸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나의 글쓰기는 잠정적 파업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파업의 종지부를 찍은 게 오늘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실은 정말 뭔가 잘 풀리는 날은 오늘이었던 게 아닐까. 엉망이었던 하루를 엉망이 아닌 글로 마무리하기 위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며 나는 지금 좀 즐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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