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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Nov 28. 2021

귀신도 때려잡고 사람도 때려잡고

군대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우주 밖으로 떠나보내는 일만 같았다

어느 모임에나 그런 선배가 하나씩은 있지 않았나. 너무 완벽해서 모든 여자후배들이 한 번씩은 마음에 품게 되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선배. 당시 내가 다니던 교육봉사 모임에도 그런 선배가 있었으니 뮤직비디오용 필터를 씌워 놓은 것처럼 새하얀 얼굴, 명문대생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똑똑한 머리, 덤으로 유머감각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그랬던 선배가 군대를 갔다가 첫 휴가를 나온 날, 나는 군대란 것이 지니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보았다. 선배가 들려준 군대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험악했느냐고? 아니. 그건 뭐 별것 없었다. 반쯤 무용담이 섞인 그의 이야기 속 군대는 힘들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은 거쳐야 할 관문이자 훈장 같은 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른 남자선배들의 맞장구 역시 비슷했다. 아직 군 생활이 한참 남은 그를 위로해주면서도 군필자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 주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선배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코올이 주는 해방감으로 잔뜩 풀어져 있던 선배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짧은 통화를 마친 후 선배는 같이 휴가를 나온 선임이 있는데 여기로 와서 놀아도 되냐고 물었다. 뭐 이미 답이 내려진 질문이었다. 얼마 안 있어 그 선임이란 사람이 나타났고, 어색한 합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부대에서도 매일 보는 후임 얼굴이 새삼 또 그리워서 온 건 아닐 거고, 술자리에 여자후배들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온 게 아닌가 싶다. 분위기가 어색할수록 술은 더 들어가는 법. 거나하게 취하기 시작하자 그 선임이란 사람의 평소 버릇이 슬슬 드러났다. 초면인 우리와 대화할 때도 자꾸 말끝마다 추임새처럼 욕이 따라 붙고, 선배와 말을 할 때면 거만스러운 몸짓으로 툭툭 어깨를 치거나 다짜고짜 어깨동무를 가장한 헤드락을 걸었다. 심지어 선배보다 나이도 어렸는데.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마음엔 안 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사람이 피우던 담배를 먹고 있던 안주 그릇에다가 비벼 끄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늘 그랬던 것처럼.


사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부분 왜곡되고 삭제된다. 나도 그 날의 기억이 모든 구석마다 선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안주 사이에 박힌 담배꽁초를 말없이 응시해야 했던 그 짧은 정적의 순간만은 선명하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으로 무례한 행동에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이런 순간을 수도 없이 겪어야 할 선배 생각에 화를 넘어선 두려움과 슬픔이 밀려와 결국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감. 그 때 그 자리의 우리는 모두 무력했다.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그 선임이란 사람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었다. 선배 역시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대신 우리 시선을 피했다. 그게 모두의 최선이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 된다.
여자들이 왜 사회생활을 못하는 줄 알아?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


그 시절 어른들은 지금보다 공공연하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실은 어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구 남자친구가 미필자라고 하면 일단 한 번 갸우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복학생 선배들은 참을성 없는 여자애를 발견하면 꼭 군대를 들먹이며 흉을 봤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군대를 가보진 않았지만 그 곳에서는 분명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어떤 태도를 가르치는 듯했다. 인내 혹은 순종, 좀 더 부연하자면 그 과정에서 필요악처럼 발생하는 무례함과 폭력 앞에서 입을 다물고 무력감을 체화하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런 태도로 지켜내야만 하는 게 군대와 사회의 평화와 안녕라면 애초에 그게 진정한 평화이고 안녕일까.


물론 군 생활에서 정말 긍정적인 배움을 얻은 이들도, 그 시절의 추억이 오히려 그리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부대에서 함께 생활한 선후임이나 동기들과 좋은 인연을 맺어 제대 후에도 오래도록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많이 봤다. 나 또한 그 시절 군대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히려 가슴 설레던 순간들이다. 좋아하던 친구가 배치된 부대로 온갖 과자와 생필품을 잔뜩 채워 넣은 소포와 밤새 쓴 편지를 보내던 날들, 낯선 번호로 수신자부담전화가 오면 그 친구에게 온 전화인가 싶어 벨이 울리자마자 얼른 전화를 받던 순간들은 이제는 다시 경험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 날 밤 술자리에서의 불쾌한 기억은 잊고 지냈다. 그 후 선배는 무사히 전역하였고, 나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보다 더 불쾌한 일들도 견뎌내게 되었으니까. 그 예의 없던 인간도 어디선가 제가 하던 행동을 잊고 제법 그럴듯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거고, 폐쇄적인 집단과 계급의 힘을 빌려 더 끔찍한 일을 한 인간들도 잘 살아가고 있을 거고, 이제는 입대할 때 휴대폰도 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그럼 된 것일까. 정말 다 괜찮은 것일까.


모르겠다. 그냥 요즘 들어 길거리에서 군복 입은 앳된 얼굴들을 볼 때면 자꾸 오래 전 생각이 난다. 지금보다 더 촌스러운 국방색 군복을 입고서 빡빡머리로 입대하던 내 친구들, 선후배들. 함께 술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우주 너머로 보내지듯 사회와 고립되어야 했던 그들은, 돌이켜 보면 폭력과 계급의 질서를 배우기엔 너무 어린 고작 이십대 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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