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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Dec 20. 2015

돌아온 백수; 퇴사하던 그 날

회사적 인간 되기 #1

너  성형 수술했어? 얼굴이 폈는데?


첫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난  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퇴사 후, 성형외과도 피부과도 가지 않았지만 얼굴빛은 환하게 밝아졌고 눈가엔 생기가 가득해졌습니다.

도대체 회사생활은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낯빛도 어두워지고 얼굴에 웃음기도 사라지게 했던 걸까요?


첫 직장을 다니면서 제가 일을 꼼꼼하게 잘한다거나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는 둥글둥글한 성격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회사생활은 나만 힘든 건지 도대체 출퇴근길에 만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어려운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뽑아만 주면 영혼이라도 팔아서 열심히 일 하겠다는 다짐은 한참 전에 잊었고, 일이 적성에 안 맞는지 아니면 일은 맞는데 회사가 안 맞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먼저 이 업계를 떠나 볼게요.’ 하고  그만두는 상상은 머릿속 한 구석에 오래전부터 웅크리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힘든 회사생활이라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이라도 느끼는 편이 낫겠지만 막상 딱히 좋아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해 보고 싶은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져 도전하기 조차도 두려웠습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패션 MD가 될 정도의 열정은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 같았고, 세계 곳곳을 다니는 승무원이 멋져 보였지만 승무원을 준비하는 무수한 지원자들을 보며 그 치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를 받아 준 회사의 회사원이 되었고 결국엔 제 발로 뛰쳐나오게 된 것입니.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 인사를 드린 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퇴사를 실감했습니다. 또 다른 입사를 위한 퇴사가 아니었기에 마지막 퇴근길에 마신 공기에서 대학입시를 끝냈을 때와 같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 그 공기를  내뱉는 단 1초도 되지 않는 순간, 왠지 모를 패배감과 막막함에 사로잡혔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지원하고 내 발로 들어온 회사를 나가는 것 또한 나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지만 입사와 퇴사라는 두 가지의 다른 선택은 어쩌면 성공과 실패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듯했습니다. 

1년이나 출근해서 보낸 긴 시간은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1년'밖에' 버티지 못한 것이었고,  1년 동안 해 왔던 일로 나의 적성을 찾은 행복한 결말도 만들지 못했. 


퇴사하고는 매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노트북을 들고 집 앞 커피숍으로 ‘출근’ 했습니다. 이것 좀 다시 해 오라는 상사도, 빨리 좀 처리해 달라는 거래처도 없는 커피숍에 앉아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썼습니다.

점심이 되면 그 날 먹고 싶은 메뉴를 어떤 이의 방해도 없이 결정해서 사 먹고 저녁쯤 집으로 향했습니다. 야근 대신에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모여 저녁을 먹으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체질에 맞나 보다고 생각할 무렵 사원증을 메고 삼삼오오 커피를 사러 오는 회사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무리에 끼려고 발버둥 치던 취업준비생 시기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초라한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저 무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첫 직장생활이 썩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기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나 이력서 상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   .

같은 사실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실패한 경험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일 중에서 고작 한 가지를 경험해 보았고 운 나쁘게도 나와 잘 맞지 않았다고 말이죠.


그러고 나서 지금은 새로운 회사에 다니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지 않은 채 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하고 대학생 때는 취업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중이지만,

그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는 ‘봄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출근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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