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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ug 08. 2023

카쥬의 보물창고

짤막한 동화 한편

  햇빛이 짱짱하게 내리는 짱짱숲에 카쥬라는 아이가 있어. 카쥬는 온몸에 갈색 털이 난 작은 킨카주야. 얼굴은 너구리를 닮았고 동그란 눈은 흑진주처럼 까매. 꼬리는 몸통만큼 길고 잽싸게 다니지. 오늘도 카쥬는 나무등줄기를 쪼르르 내려가 연꽃잎 줄기를 건너 보물창고로 향했어. 카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보물 창고로 말이야.

  며칠 전이었어. 카쥬는 미어캣 친구인 캣이 파 놓은 굴을 보고는 눈이 왕방울만큼 커지고 볼은 씰룩거렸어.

  “와! 캣. 이 굴 정말 멋져. 나 줘.”

  “왜 널 줘야 하는 건데?”

  캣이 뾰로통하게 말했어. 

  “지금껏 이렇게 어둡고 단단하게 다져진 굴은 처음 봐. 나 주라.”

  캣은 카쥬의 칭찬에 볼이 발그레해졌어.  

  “흠흠, 보는 눈은 있네. 좋아. 대신 당분간만 쓰는 거야.”

  카쥬가 캣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나게 짐을 날랐어. 그때부터 동굴은 카쥬의 보물창고가 됐지. 

  오늘도 창고가 가득 채워졌어. 훔쳐온 열매들, 새가 정성스럽게 잘 말린 꽃잎, 영양분이 뛰어난 독수리 똥까지. 창고는 캣이 봐도 탐나는 것들로 한 가득이었어.

  “워우~! 오늘 보물 도착했어. 다들 모여!”

  카쥬의 힘찬 외침에 다람쥐, 뱀, 토끼, 너구리들이 모여 들었어.

  “오~ 나쁘지 않은데. 저번에 말한 것도 찾아왔군. 다음에도, 알지?”

  너구리가 능글맞게 웃으며 열매들을 쓸어 담았어.

  “이거, 이건 내꺼! 우리 집 창가에 붙이면 정말 예쁘겠어.”

  토끼가 마른 꽃잎들을 착착 포개어 머리에 올렸어. 카쥬가 쌓아둔 보물창고는 순식간에 거덜이 났지. 왁자지껄하던 숲속 친구들도 금세 사라졌고 말이야.

  “헤헷, 오늘도 모두들 좋아하구나. 잘 가, 친구들!”

  카쥬가 사라진 친구들 뒤통수에 대고 손을 흔들어 댔어. 캣이 그런 카쥬를 한심한 듯이 바라봤지.

  “캣, 너도 하나 하지 그랬어?”

  카쥬가 말했지만 캣은 새치름하게 고개를 저었어. 

  “됐어. 난 네가 훔쳐온 것들은 싫어.”

  카쥬가 코를 삐죽거렸어. 

  “흥! 싫으면 마라. 기껏 생각해줬더니.”

  뿔이 난 카쥬와 캣은 서로 등을 지고 돌아섰지.     

  “카쥬와 캣, 둘 다 여전하구나.”

  등나무 위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어. 카쥬가 위를 보았어. 부엉할배가 부리부리한 눈을 하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지.

  “부엉할배! 언제 왔어요?”

  카쥬의 표정이 환해졌어. 오랜 만에 보는 부엉할배였거든. 

  “아!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캣이 덩달아 인사했어. 부엉할배가 미소로 답했지.

  “안 계시는 동안 평화로웠는데. 또 잔소리 듣게 생겼네.”

  카쥬가 표정과 다르게 귀찮다는 듯이 말했어.

  “까불기는. 아직도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구나.” 

  부엉할배가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어. 그러자 카쥬는 큰 소리를 땅땅 쳤어. 

  “할아버지도 참!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거 못 보셨어요?”

  “그 행복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니.”

  부엉할배가 입이 툭 튀어나온 카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지.

  “어이, 카쥬! 나 좀 잠깐 봐.”

  아까 사라졌던 왕뱀이 스륵 나타났어. 카쥬와 수풀에서 속삭이더니 소리 없이 사라졌지. 캣이 물었어.

  “왕뱀이 뭐래? 이번엔 또 뭘 가져오래?”

  “수리마왕이 가져간 목도리를 찾아 달래. 둥지에 한번 가봐야겠어.”

  캣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어.

  “세상에! 그런 위험한 짓을. 안 돼! 절대로 부탁 들어주지 마.”

  카쥬는 거드름을 피며 퉁명스럽게 답했지. 

  “에이 뭘. 나 믿고 부탁하는 건데, 그럴 순 없지.”

  “바보야. 널 이용하는 거야. 네가 위험해지거나 힘든 건 생각도 안 할 걸?”

  “아냐. 그런 친구 아니거든. 너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

  그 말에 캣이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지. 바보 멍청이 말미잘…. 

  카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버렸지. 언제부턴가 듣기 싫은 소리만 하는 캣이 귀찮아졌거든.

  “캣, 저 녀석은 아직 철부지야. 네 마음도 그렇게 모르다니. 쯧쯧.”

  부엉할배가 혀를 찼어.

  캣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어. 캣은 어린 시절 카쥬와 함께 뒹굴고 놀던 때가 그리웠어. 그땐 서로가 가장 친한 친구였거든. 왕뱀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야. 

  “카쥬는 주위에서 자꾸 훔치도록 부추기는 걸 왜 모를까요?” 

  “아직 보이지 않는 게지…….”     

  다음 날 카쥬는 둥지를 살피며 수리마왕이 먹이를 찾아 나설 때를 기다렸어. 마침내 둥지가 비자 카쥬는 단숨에 올라 그 속을 헤집었지. 커다란 독수리 알들 사이로 푸른 헝겊 조각이 보였어. 카쥬는 엉겨있는 진흙과 짚을 뜯어내며 헝겊을 쑥 당겼어. 그런데 너무 힘을 줘 당기는 바람에 뒤로 벌러덩 넘어졌지. 

  ‘빠직!’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알 하나가 흙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있었어. 카쥬가 넘어지면서 알을 둥지 밖으로 쳐버린 거야.

  “큰일 났다! 알이, 수리마왕 알이 깨졌어!”

  카쥬는 눈앞이 캄캄해졌어. 그때, 머리 위에서 수리마왕의 커다란 날갯짓 소리가 들렸지. 카쥬는 허둥지둥 둥지를 나와 나무 아래 바위 뒤로 몸을 숨겼어. 

  “끼아아아아아!”

  둥지에 내려앉은 수리마왕이 분노에 찬 울음을 길게 쏟아냈어. 처절하고 슬픈 소리였지. 카쥬는 식은땀만 흘리며 납작 엎드렸어. 카쥬의 귀에는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땅을 뚫을 듯이 크게 들렸어.     

  그 후 수리마왕은 짱짱숲 하늘만 뱅글뱅글 돌았어. 카쥬는 꼼짝없이 보물창고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지. 카쥬는 왕뱀이 보고 싶었어. 목도리도 주고 따뜻한 차도 함께 마시고 싶었어. 카쥬는 무섭고 외로웠거든.

  그러던 어느 스산한 밤이었지.

  ‘이런 밤에는 수리마왕도 움직이지 않을 거 같아.’ 

  카쥬가 용기 내어 왕뱀에게 달려갔지.

  “카쥬. 요새 우리 숲이 시끄럽더라.”

  왕뱀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인사 대신 말을 건넸어. 

  “으응. 저… 이거 맞지? 아휴, 내가 이거 땜에.”

  카쥬가 목도리를 내밀며 떨린 목소리로 말했어.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목도리를 살폈어. 

  “흠, 이게 맞아. 이제 창고에 갈 필요가 없겠군. 조용히 지내야지.”

  “무슨 말이야? 앞으로 오지 않겠다고?”

  카쥬가 왕뱀 말에 앉으려다 주춤했어.

  “네가 숲을 그렇게 뒤집어 놨는데 마음 편히 다니겠냐? 너한테 이제 볼일 없다.”

  왕뱀이 똬리를 틀며 그대로 눈을 감았지. 갈라진 혀로 ‘쉬륵’ 소리만 냈어.

  “어째서? 아니, 난 네가 원해서… 그걸 가져오다가 수리마왕 알을 깨트린 건데!”

  “도둑질이 네가 할 일이잖아. 그리고 내가 언제 수리마왕의 알을 깨라고 시켰냐?”

  왕뱀이 감았던 눈을 부릅뜨며 독을 뿜어 낼 듯 말했어. 

  “그런 말을…! 우리 친구 아니었어?”

  카쥬는 믿을 수 없었어. 갑자기 뱀의 비늘이 너무나도 섬뜩해 보였지. 

  “친구? 크크크. 바보 같은 녀석. 가는 길에 수리마왕에게 먹히지나 마라.”

  왕뱀이 곁눈질하며 차갑게 말했어. 카쥬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캄캄한 숲을 마구 달렸어.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밝은 별빛은 멀어 보이기만 했어. 

  ‘이럴 수가! 난 그저 도둑놈이었을 뿐이야.’ 

  가시 덩굴에 발바닥이 찢겨도 카쥬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어. 어지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어.


  “친구에겐 조건이 붙지 않는단다. 어리석은 킨카주야.”

  걸걸한 목소리가 나무 위에서 나지막이 말을 건넸지.  

  “부엉할배. 언제부터.”

  카쥬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떨궈 눈물을 뚝뚝 흘렸어.

  “다들… 친구가 아니었나 봐요. 흑, 하늘에는 독이 오른 수리마왕이 버티고 있고…. 땅엔, 여기엔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흑흑.”

  카쥬는 눈물이 차올라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어. 옆에서 슥 내밀어진 하얀 손수건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야.

  “아무도 없긴. 바보같이.”

 캣이 손수건으로 카쥬의 눈물을 닦아 줬어. 카쥬는 캣의 손길을 뿌리쳤지. 왜인지 캣을 바로 보기가 부끄러웠거든. 

  “너도 똑같아! 매일 잔소리나 하고.”

  카쥬가 고개를 돌린 채 아무렇게나 말을 뱉었어. 

  “어이없어. 정말! 너한텐 내가, 내가 걔네들하고 같았어?”

  캣은 카쥬가 답을 하지 않자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뛰어 가 버렸어. 카쥬 곁에는 흰 손수건만 떨어져 있었지. 카쥬는 캣을 잡지도 못했어. 카쥬에겐 너무나 힘든 밤이었거든. 짱짱숲 밤하늘에 부엉할배의 ‘부우- 부우-’ 소리만 잔잔히 퍼졌지.     

 밤과 낮이 몇 번 바뀌고 보물 창고 입구에는 거미줄이 생겼어. 창고를 찾는 친구도 없었고 카쥬도 더 이상 창고를 채우지 않았지.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새벽, 카쥬가 동굴 밖으로 느릿하게 기어나갔어. 동굴 앞에는 발자국이 나있었어. 제자리에서 오랫동안 서성인 그런 자국이었지. 

  ‘캣이 왔었구나.’

  카쥬는 한 눈에 알아봤어. 

  ‘내가 그렇게 못 되게 굴었는데도. 캣은 날 걱정해주고 있었어.’ 

  그때였어. 

  “작은 킨카쥬. 드디어 만났구나!”

  독기 어린 수리마왕이 날개를 활짝 펴 카쥬에게 돌진했지. 카쥬는 얼른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숨겼어. 한발 차이로 수리마왕의 커다란 발톱에 잡아 채일 뻔했어. 

  “수, 수리마왕.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카쥬는 눈을 질끈 감고 수리마왕에게 외쳤어. 수리마왕의 차가운 코웃음만 돌아왔지. 카쥬의 머릿속에 부엉할배와 캣이 떠올랐어. 두려움과 후회가 가슴 깊이 솟구쳤지. 

  ‘아, 내가 바보 같았어. 이제 끝이구나.’

  그때,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어. 눈을 떠보니 부엉할배가 수리마왕과 카쥬 사이에 막아서고 있었어. 카쥬는 부엉할배를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지. 

  “이 애를 보내줘라. 수리마왕아. 새끼를 잃어 슬프겠지만 이런다고 돌아오지 않는 걸 알잖니.”

  “비켜! 저 녀석을 그냥 둘 순 없어.”

  수리마왕은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찬 눈빛을 카쥬에게서 떼지 않았지.

  “미안해요, 미안해. 엉엉.”

  카쥬는 그 눈빛을 보자 눈물이 솟구쳤어. 

  “그깟 헝겊조각이 뭐라고. 나 때문에 아기 독수리가…. 다 제 잘못이에요.”

  수리마왕은 퉁퉁 부운 눈으로 울먹이는 카쥬에게 차갑게 말했어.

  “흥! 도둑질이나 하는 녀석 말을 누가 믿어.”

  “멈춰요! 수리마왕.”

  캣이 나무 넝쿨을 넘어 달려왔어. 

  “카쥬는 바보 같지만 착한 친구예요. 정말 실수예요!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캣이 카쥬를 가로 막으며 수리마왕에게 애원했어. 

  “비켜라. 너도 다친다.”

  수리마왕은 망설임 없이 부엉할배를 비껴날아 카쥬에게 돌진했지. 날카로운 부리가 번쩍였어.

  “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 건 캣이었어. 카쥬를 감싼 캣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지.

  “카쥬, 안 다쳤지? 다행이다.”

  “세상에. 캣! 나 때문에…! 흑흑,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카쥬는 캣을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어.  

  “하…. 친구 하나 잘 뒀군. 운 좋은 줄 알아라, 작은 킨카주. 다음에는 용서 없다.”

  수리마왕은 하늘을 향해 사뿐히 날아가 버렸어. 하늘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붉은 태양이 떠올랐어. 

  “부엉할배. 어떻게 해요! 캣이.”

  “캣,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그나마 상처가 깊지 않은 거 같아 다행이다.”

  부엉할배는 캣의 어깨를 살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 카쥬는 동굴로 뛰어가 곱게 접힌 하얀 손수건을 꺼내왔어. 그리고는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캣의 상처를 감쌌지. 

  “캣, 우리의 동굴로 함께 돌아가자.”

  오랜만에 캣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어. 소중한 친구가 돌아왔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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