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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행자 Aug 07. 2019

쉼 다운 쉼

#3. 힐링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더라 14/08/2018


8월의 중간. 추위로 몸이 오그라들어 방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커피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시기. 포근함을 머금은 담요를 덮어쓴 채 사랑하는 가족과 체온을 나눈다. 향과 분위기에 취하는 쉼 다운 쉼을 누리는 여유가 그립다.

아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빠, 이거 해줘.
아빠, 저거 하자.
아빠, 나갈까?
내가 이거 해줄게.
저건 이렇게 하는 거야.
얼마 되지도 않는 자신의 표현을 총동원해 회유하고 조르고 어르고 달랜다. 귀여운 놈.

추위를 핑계 대고 싶지만 뉴질랜드의 올 겨울은 이상하리만큼 춥지도 않고, 맑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그것마저도 녹록지 않다. 그걸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눈치 빠른 아이는 아빠가 돌아오기가 무섭게 달려든다.

쉼은 무슨. 서둘러야 한다.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해질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급하게 나갈 채비를 하고 발길을 옮겨야 한다. 왼손엔 아이의 오른손이. 오른손엔 강아지의 목줄이. 목엔 카메라가. 집 앞 산책길에도 준비물이 많다.

이 정도라면 순조롭겠지만 아이의 요구는 끊임이 없다.
아빠, 안아줘.
아빠, 목마!
아빠, 쭈니 내가 할래.
(강아지 목줄을 달라는 거다. 물론 목줄을 건네주는 순간부터 우리 집 강아지는 더 이상 걷지 않는다.)
아빠, 내려줘.
아빠, 눈 부셔. 선글라스 줘.
아빠, 무서워.
잡아 잡아~ 까르르까르르.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나. 싸이의 랩이 육아 랩이었나.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걸어 공터까지 간다. 짧은 거리인 줄 알았는데 늘 험난한 여정이다.

아이러니 한건 공터에 도착해서부터다. 쉼은 집에서 갖고 싶었던 건데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리는 마음의 쉼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의외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아이와 강아지를 보고 있노라면 어찌나 개운하고 기분이 좋은지.

아이와 강아지는 지치지 않는다. 뛰고 또 뛰고. 웃고 또 웃고. 별 다른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같이 뛰 다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즐거운가보다. 즐거움이 전염되어 나도 함께 즐겁다. 쉼 다운 쉼이 무엇인지 그동안 잘 몰랐었구나 생각이 든다. 이게 진짜 쉼이고 힐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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