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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술희 Nov 09. 2023

10월의 편지


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지각생 수지입니다.  


10월은 다소 편지를 늦게 썼지요. 하하.

보통 저는 연차를 쓴 날에 편지를 쓰는데요. 10월은 여러모로 연차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마감이  늦은 것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만큼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도 했고요.


편지가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질문해 주신 친구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9월의 편지 그 이후


https://brunch.co.kr/@suuuuuuzy/52

9월의 편지 말미에는 10월은 디톡스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었는데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참 다행이죠?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지 또 왜 바빠?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개인의 일상을 잘 챙기는 일 만으로도 충분히 바쁩니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다니요. 그 비결, 10월의 편지에 써 내려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0월 정산


10월의 근황 : 헬씨걸의 귀환..

10월 초에는 러닝화를 구매했습니다. 달리기 좋은 날씨에 실컷 달려봐야지 하는 포부를 담고서 과감한 결제를 했죠. (저는 헬스 4년 차인데도 여전히 운동은 장비빨이라고 믿는 사람..) 그리고 실제로 꾸준히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이트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잘 먹으며 지내던 여름을 지나 가을 초입에는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가을은 정말 먹기 좋은 계절이에요. 저는 몸의 감각에 예민해서 무거워지면 금방 어디에 살이 붙었는지 눈치를 채거든요. 체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제한선을 이미 넘어버려서 동선이 제일 편한 헬스장으로 당장 등록했습니다.

새로운 헬스장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정했습니다. 젊은 직장인들이 많은 동네여서 그런지 퇴근 후 7시-8시 쯤이면 구디에 있는 운동깡패들은 다 모였습니다. 초반에는 민소매 형님들의 기에 눌리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도 적응돼서 저도 깡패인 척하며 운동합니다. 운동 좀 한다는 친구에게 이런 등록 후기를 들려주니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니 말이 많아진다며 "누나는 운동을 해야 돼~" 하던데 딱 들켰지 뭐예요. 역시 활기가 돌아요. 오랜만에 자극점 찾는 것도 즐겁고요.  

꾸준한 운동과 식단으로 헬씨한 라이프스타일로 루틴을 되찾아오는 것이 목표이고요. 새해에 다이어트 계획을 별도로 세우지 않기의 일환으로 연말까지는 달려보렵니다!


10월의 용기 : 실패를 말하기

저는 실패가 누적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느 날 절실한 마음에 찾아간 누군가가 수지는 어떤 과업이든 나를 녹여내면 어느 정도의 성취가 가능하지만 어떤 영역에서만큼은 무엇을 해도 얻지 못하니 거기에 가로막혔을 때 이뤄내지 못하는 저를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며 괜찮다고 격려하면서도 유독 자신에게는 성적표를 들이미는 게 저의 문제라고요. 동의했습니다. 반면에 실패를 말하는 것에는 서슴없는 편입니다. 부끄럽거나 자신 없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때 기대하지 않은 다른 성공(?)이 되기도 하니까요. 직감적으로 그런 순간에 저의 실패가 도움이 될 것 같다면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제가 가진 힘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저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이 저를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로 생각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실패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사이를 묵묵히 견디는 것이 늘 미션이랄까요?

얼마 전 기쁜 소식을 들고 온 태환이가 “견딘 시간은 반드시 보상받는다 “ 고 했던 말에 진한 자국이 남았습니다. “나는 왜 늘 이렇게 진심일까?”에 빠져있다가 ‘그게 그냥 나인 걸 어떻게 해~ ’라고 받아들이고 사이를 걷고 있어요. 이 시간은 결국 어떤 모양으로든 보상받을 거예요. 진심인 시간도, 받아들이는 시간도, 저벅저벅 사이를 걷는 시간도요.

 (가장 사랑하는 포토그래퍼가 찍어준 사진. 친구의 기쁜 소식을 들으면 덩달아 기뻐서 이 날 두 시간이 한 주 내내 가고 있다. 짱.)


10월의 나들이 : 파주의 다른 이름은 러브

저에게 하루가 주어진다면, 가장 친밀한 사람들과 편하게 다녀올 만한 곳을 갈 수 있다면, 차를 타고 갈 수 있다면, 제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바로 경기도 파주입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먹거리, 자연, 문화 예술이 모두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파주의 다른 이름은 러브라고… 부릅니다…ㅎ

저와 파주의 인연은 꽤나 깊어요. 홍대, 신촌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반차를 쓰고 2시에 퇴근하면 홍대입구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가던 곳이 바로 파주였거든요. 당시엔 가장 친한 동료이자 이제는 친구인 지영과도 가기도 했고요. 파주는 꼭 가봐야 한다며 몇몇 사랑하는 친구들이 데리고 가거나 혼자서 후루룩 다녀온 날도 수두룩 합니다. 추억이 담긴 그 파주에, 가을을 맞아 또 다른 친구들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코스를 다녀오게 되었어요. 원래는 파주에 가면 여김 없이 ‘황인용의 카메라타’를 방문하여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음악에 푹 젖어 있다 오곤 했거든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새로운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콘크리트'가 오픈했다 하여 다녀왔습니다. 사실 새롭다고 하기엔 이미 오픈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저에겐 첫 방문인지라 모든 것이 새로웠어요. 이미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곳이라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픈런을 하기로 했던 결정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한적한 시간에 원하는 자리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에 푹 젖을 수 있었거든요. 최근 하트 시그널4에서 주미와 민규가 앉았다던 그 자리(제일 명당)에서요. 이곳에서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고, 속 시끄러운 생각을 멈출 수 있고 그냥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됩니다. 그냥 있고 싶은 대로 있으면 되어요. 20,000원 입장료에 생수 한 병을 받는 것뿐이지만 나오는 길에는 그것이 별로 비싸단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시간과 음악과 잠시 멈춤을 산 거니까요. (노을을 보고 싶다면 저녁 시간을 사수해야겠지만 주말이지만 한적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오픈런을 추천합니다!)
식사는 또 어땠게요. 건강식으로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저는 외출할 때 한식, 양식으로 식사 메뉴를 정한다기보다는 건강식으로 정하는 편인데요. '건강식은 맛없음'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니에요. 저는 맛있는 건강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방문한 곳은 바로 '산뜨락 곤드레'. 4명이서 갈비찜과 더덕구이 정식에 전까지 시켜서 야무지게 먹었습니다. 친구들과 입을 모아 파주에 또 간다면 재방문 의사 200%라고 외치기도 했고요. 건강하고 든든한 한 끼 원하시는 분들은 꼭 방문해 보시길!
파주 여행의 절정은 바로 마지막 코스였던 '마장호수 출렁다리'였습니다. 파주에 출렁다리 두 군데가 있다는데 일행 대부분이 쫄보였던지라 무난한 코스로 마장호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완연한 가을에 단풍이 시작되는 시기이니 당연히 사람이 북적였지만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거닐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해지면서 사람들도 덜 북적이더라고요. 파란 하늘부터 붉은 하늘까지 다채로운 하늘은 물론 물과 풀까지 곁 들여져서 온전한 가을색감을 누리기엔 최고의 코스입니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가족들과 함께 오기 딱 좋습니다. 물론 저희들처럼 친구끼리 추억을 남기기에도 최적의 장소이고요!
이 정도면, 파주의 다른 이름은 '러브'라는 소제목이 딱 안성맞춤 아닌가요?


10월의 몰입 : 일

 10월의 몰입은 '일'. (정확히는 회사 일.) 지난 여름엔 일을 '해낸다' 보다는 '한다'에 가까워서 열일모드가 주춤했다면 가을엔 여러 의미로 일복에 터져 살았습니다. 지점은 항상 바쁘지만 이번달엔 유독 그랬습니다. 10월 초 팀장님과의 먼슬리를 진행하면서 '점프하는 감각'이 지금 시점 즈음엔 필요할 것 같다는 3분기 소회를 나누었었거든요. 그런데 10월의 3주간은 파트장님과의 전우애가 생기면서 예상치 못한 다른 점프를 하게 되었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점프를 하기는 했으니 올해 잘 마무리하겠다 싶습니다. 한동안 회사 이야기를 안 했었는데 할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생기고요. 역시 저는 워킹걸 재질이 맞는 것 같네요.


10월의 변화 : 자연스러움

가장 기쁜 변화는 제가 어디에서든지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어딘가에 속해질 때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리는 편이거든요.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는 루트는 다양하지만 일단 서서히 금이 가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잖아요. 최근에는 삶에서 속해져 있는 전반에 금이 가고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다행이죠.

첫 번째로는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우정이 생기기도 했고요. 물론 이전에도 사이가 좋았지만 관계에서 우정이 싹트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왁자지껄 웃기도 하고 저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동료의 가족들과 반려동물의 안부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요. 뿐만 아니라 요즘엔 언니 오빠들과 노는 게 즐겁습니다. 저는 화요일마다 교회에서 듣는 제자반 수업이 있는데요. 2년 동안 한 반으로 뭉쳐 놀던 언니, 오빠, 동생들인데 이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졌달까요. 모두가 모여서 각자가 이상한 말을 하는데도 그저 웃겨서 깔깔대면 항상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 있더라고요.

자연스러워진 게 기쁜 이유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 보이기 위해 열심이지 않아도 되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있어도 아무도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앉는다는 걸 더 나아가 판단의 여부가 저에게 전혀 상관없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10월의 생각 1 : 침묵은 때론 다른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침묵이 때론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무응답이 응답이다'와 비슷할 것 같아요.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어느 날에 만난 누군가가 오랜만에 근황을 나누며 제 3자의 이야기를 제게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3자와는 친분이 별로 있지는 않았던지라 그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에 어떤 공감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 말을 하지도 못했어요. 집에 가고만 싶었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만하라고 이야기했어야 할까?'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내뱉기엔 그날 만난 누군가와의 관계가 신뢰로 형성되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결국 못했거든요.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제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편입니다. 추진력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편인지라 중요한 안건에 대해서는 꼭 저를 이해시켜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름부터 고민해 오던 문제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납득될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세월이 쌓였었어요. 그런데 결국 제가 깨달았던 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응답이 없는 게 응답이란 거요. 아무 반응이 없는 게 때론 다른 메시지를 준다는 거요. 이걸 알고 나서는 그날의 만남을 기억할 때 저의 침묵이 어떤 메시지를 가져왔는지 그 사람이 알았기를 그냥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10월의 생각 2 : 시간은 약이 맞다.

10월 한 달간은 저를 비롯해서 주변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약이야. 지나면 괜찮아." 제게 그랬듯 저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정말 시간이 약일까?'라는 의문을 품고서도 말이죠. 어려움을 직격타로 맞고 있는 그 순간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약이다'라는 공식은 불변의 법칙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의 정도가 1~10까지 라면 당장 0이 되지는 않겠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지날수록 0에 가까워지더라고요. 하루에 10번도 생각날 일이 7번으로, 3번으로 줄어들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마법의 주문처럼요.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저에게도 말하는 셈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려움이 0이 되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를 가지고 싶은 건 아닐까, 마음에 구멍이 뚫리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마저도 저 주문이 해결해 주겠죠. 시간은 약이 맞으니까요.


11월은


이미 11월이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지난 10월을 돌이켜보면 가장 용기 있고 귀여운 한 달을 보냈습니다. 속 시끄러운 일도 있었지만 인내했고, 30년 넘게 살면서 평생 해보지 않았던 말을 속 시원히 해보기도 했거든요. 그 장면이 함께 있던 이에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길 바라면서요!


벌써 올해만 10번의 편지를 썼고 2023년이 두 달 남았습니다. 겨우 두 달 말고, 아직 두 달이나 남았어요...라는 말을 쓰기에는 겨우 두 달 남았어요. 하하. 저는 나이 드는 게 왜 이렇게 싫을까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30대 중반의 길에 들어선다는 게 겁이 나기도 합니다. 내년에도 저답게 잘 살 거면서 겁부터 내는 제 버릇 참 어디 못 가요.


연말이 다가오다 보니 남은 두 달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습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인연 속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잔뜩 누리고 싶고 지나가는 가을을 붙잡으면서 만추를 잔뜩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11월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지키고, 11월의 편지 마감도 잘 지키겠습니다.


10월 내내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하나가 꽂히면 계속 듣거든요.)


https://youtu.be/IGVOxPeeCMI?si=Yk3I-uzNefhfB9Lb



좋은 선물이 되었길 바랍니다.

11월의 편지는 금방 돌아옵니다.


11.09. THU

점심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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