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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Sep 05. 2022

나는 '급' 따지는 자랑스럽지 않은 한국인이었다

김혼비, 박태하 부부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읽고 – 2

돌이켜보면 나는 '큰 기업의 높으신 분'들과 어울리는 게 최대 성과인 조직이 싫어서 전 직장들을 떠났다. 전무, 상무 등 '무무급'과의 식사 약속이 참신한 발제보다 중요했던 조직. 독자가 아닌 회사가 주최한 포럼에 참가한 기업체 사람들의 숫자로 '피드백' 성과를 확인하는 조직. 콘텐츠나 기사의 결보다는 부대끼는 기업의 급, 부대끼는 취재원의 기업 내에서의 급이 내 역량과 직결되던 그 생태계가 못내 숨 막혔다. 나는 저 사람들과 소주 먹는 일에 관심 없어요. 저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서 사비를 들여 골프 할 마음도 없어. 나는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미련 없이 떠났다.


현 직장에 들어와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들은 자리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재화나 서비스, 혹은 노력의 수준으로 '급'을 평가받고 싶어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제가 무려 삼성/SK출신이에요!' 대신 '초기 자본금이 다 떨어져서 대리운전 뛰어가며 개발했어요'에 방점을 둔 소위 짜치는 서사. 남들 눈에는 어떻든 자기 눈에 너무 중요해서 인생을 걸고 뛰어든 개발기까지. 살면서 어느 누가 이름도 모를 기술을 접목한 농기구 개발 과정을 수화기 너머 1시간 이상 듣고, 이를 텍스트로 논리적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겠는가. 엉덩이 아프지 않은 안장 개발기를 듣다 기존의 안장 구조가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까지 들어본 사람 지금 손!


K-스러움의 기원을 파헤치는 책 <전국축제자랑>을 읽다 내 안의 K-스러움을 각성했다. 나는 급 따지는 K-관성을 혐오하면서도 그 평가체계의 노예라는 사실을. 내가 입사 초반 느꼈던 위축된 감정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 'K 세계관의 과몰입자'들이 설정한 카스트 상단에 위치하지 않은 것 같다는 판단에서 비롯한 위기감임을. 이 모든 게 '자주 어울리는 사람=나의 급'이라는 K 방정식의 극치에서 비롯했음을. 지금 와서 고백하지만 무척 부끄럽고, 만난 이들에게 실례가 되며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 사고체계다.


얼마 전부터 인터뷰에 복귀한 나는 인터뷰 후 불화가 발생할지언정, 인터뷰하는 순간엔 인터뷰이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tmi는 그 무엇보다 값진 정보가 된다. 2020년 '이런 것까지 물어봐야 해?' 고민했던 에디터 진은 2022년 예상 질문지에 '이런 것'을 가득 담아 인터뷰를 준비한다. 누군가에겐 광고성 정보고, 알 필요 없는 것이겠지만 혹자에게는 자존감의 토대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한 어떤 것을 조명하기 위해서.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의 종류와 층위가 상상이상으로 풍요롭고 다채롭다는 것을 이름 모를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박태하-김혼비 부부 작가가 지역 축제에서 찾은 크고 작은 존재의 수레바퀴들을 인터뷰를 통해 발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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