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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Sep 05. 2022

네가 생각하는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은 대체 뭔데?

김혼비, 박태하 부부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읽고 - 1

"누군가들의 비웃음이나 놀림을 눈 딱 감고 무시하고 문득문득 꺼내 보며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쟁취해 낸 사람들에게서 얻는 어떤 기운 같은 것."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였다.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시켜 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많은 이들의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히 기획부터 신박했다. 한글을 마구 가지고 노는 작가 부부가 K-스러움의 기원을 찾아 '정념과 관성이 교차하는 지역 축제'를 순방한 이야기. 재미없을 수가 없는 기획이고, 어설픈 예능 프로그램보다 훨씬 재밌었다.


무엇보다 책 말미에 선연히 드러나는 메인 테마가 너무 좋았다. 단순히 마이너해서, 소재가 희소해서 지역 축제를 조명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사그라지고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절실하고 어떤 이에게는 생계나 자부심의 근간이 되는 것을 기억하겠다는 다짐. 내가 지금의 일을 하며 느껴온 것들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크게 와닿았다.


얼마 전에 회사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가장 큰 용량을 차지하는 녹취 파일을 삭제했다. 100개가 훌쩍 넘었다. 실수로 녹취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최소 110명은 인터뷰한 셈이다. 요즘 다시 인터뷰 나가고 있으니 이 숫자는 더 빨리 증가하겠지.


2020년 5월, 스타트업 인터뷰만 하는 줄 알고 이 회사에 입사했는데 영세 제조사를 인터뷰하는 일이 더 많았다. 처음엔 좀 당혹스러웠다. 인터뷰는 재미있었지만 내 일을(정확하게는 내 취재대상을) 하찮게 보는 주변인들도 적지 않았다. (네가 인터뷰하는 그런 회사들이랑 우리 회사의 접근법은 차원이 다르긴 한데~)

주눅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근데 말야. 니들이 그렇게 쉽게 재단할 사람들 아니거든? 전도유망한 스타트업도 많이 만났거든? 물론 안다. 하찮은 고나리에 일일이 대응하는 게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것임을. 그걸 아니까 순간 치솟는 짜증이나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매번 꾹 삼켜야 했다. 마음 속으로 이걸 세 번 외치며. '이 바닥 X도 모르면서.'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정신을 차리면 내가 이런 시선에 적잖은 감정을 쏟았다는 사실에 강한 현타를 느낀다. 아 뭐야. 이건 내가 스스로 내 일을 떳떳하지 못하다 여겨서 느끼는 열폭이 아닌가. 결국은 내가 내 마음의 소리에 역정내는 격이 아닌가. 나는 왜 온 마음을 다해 너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가. 내가 생각하는 숭고하고 가치 있으면서도 (가오가 나는) 그런 일은 대체 무엇인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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