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복하는 게 그렇게 큰 일인가.
욕심이 많아요. 돈을 더 벌고 싶어서 바쁘고 피곤한데도 과외를 더 늘리고, 그 와중에도 운동은 하겠다고 헬스도 끊어놓고, 강아지 산책은 이틀, 못해도 삼일에 한 번은 반드시 해 주려고 해요. 해주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처럼. 그림도 끊기면 안된다는 마음에 몇 분 드로잉이라도 하려 꼭 펜을 쥐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그 시간을 값지게 보내고 싶어해서 조바심을 내요. 요즘따라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글도 자꾸만 손 대어 보려 늘 붙들고 있어요. 죄다 욕심이고, 이렇게 많이 붙들고 있지만 부지런하지를 못해요. 그림 한 점을 그리고 싶은데 게을러서 드로잉밖에 못하는 것이고, 미리 다 해버리면 시원할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시간을 조금 더, 하고 욕심 내는 거에요.
요새는 말 하는 일과, 누군가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티내는 일에 욕심을 내어보는 중이에요.
저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니 애초에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굳이 말을 안 해도 되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리가 크면서, 점점 하고 싶은 말도 생기고 해야만 하는 말도 생기고, 어쨌든 할 말 정도는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에요. 저는 말을 하지 않아서 오해 받는 일도 싫었고, 바보 취급은 더더욱 싫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말을 잘 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도대로 남에게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게 만드는 게 대단해 보였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꼭 말을 잘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중요해 보였어요. 저는 그런 중요한 걸 놓치는,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고요.
하지만 대화를 해야 하는 상대들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서 원인 모를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늘 어렵고, 어딘가 이상하고, 시원스럽지가 않았어요. '이런' 말을 '저런' 분위기로, 납득할 수 있도록 잘 말하는 건 정말 어려웠어요.
이유를 정말 몰랐는데. 오늘 '나 너를 이렇게 신경쓰고 있어-'를 티내기 위한 대화를 해 보려고 했는데, 장렬히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서운하게 만들었더군요. 상대는 내게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너랑 이야기 할수록 내 말투는 더 또렷해지고, 대화가 편하지가 않아.' 이런 말과, '틀린 말을 좀 넘어가 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너는 무식하거나 바보같이 보일까 봐 지나치게 무서워해.' 라는 말도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말을 아주아주 많이 곱씹는 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말할 때 세 번 고민하고 말한다던가 하는 이야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 하는 거지 그럴 새가 있나? 라는 식인 저였는데. 저는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적절한 단어 선정에 늘 신경썼고, 그것들이 나쁘지 않은, 오해 받지 않을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면 만족스럽곤 했어요. 심지어는 하면 좋을 말을 중얼거리며 연습하기도 해요. 지금도 연습? 뭔가 이상한데. 이 의미가 맞을까. 하며 다른 좋은 단어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이 저의 말하기에 더욱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해 와아무런 의심 없이 하던 일이었는데, 답답함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니요.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아마 알지 못하고 이 기술들을 의심 없이 그저 연마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일도 이런 습관이 드는 데에 한 몫 했을 거에요.
잘 말하기를 욕심 내는 거요. 그거를 조금 내려놓아야 하는가 봅니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잘' 말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대화의 말은 글의 말과는 또 다른 종류이더군요. 그러나 저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이 때 해주면 좋을 말이라던지, 상대가 들으면 좋을 것 같은 말들을 알아채거나 유추해보는 것에는 젬병이에요. 정말, 아무런 소질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겠고..
일단은 편하게 아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그러나 쓸데 없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데 굳이 꺼내지 않는 그런 말들 혹은 입술 언저리에서 맴도는 망설이는 말들을 쉽게 툭툭 별 고민 없이 뱉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요새는, 말을 대하는 게 어렵지만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별 의미 없는 말을 애써 꺼낸다거나, 누군가의 말 흉내를 낸다거나, 그런 일들을 열심히 시도하던 중이었어요. 나름의 노력이었지만 답이 아니었던, 갈증만 늘리는 이상한 방법이었던 거에요. 이런 것들부터 떨쳐내어야 할 테입니다.
글도 편하게 한 번 써 나가 보았습니다. 이마저도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평소에 비하면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갔어요. 완벽주의자는 절대 아닌데, 어떠한 강박이 분명 있긴 한데, 성격 상 아무도 몰라서 저 또한 몰랐던 일인데, 이제야 알아냈습니다. (2018.05.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