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억울한 오해를 사는 순간들이 있다.
내 의도와 다르게 오해했거나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면 영문을 알 수 없어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고민하게 된다. 구구절절 설명하며 오해를 풀 것인가,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며 그냥 둘 것인가. 보통의 나라면 후자를 택하겠지만 마음을 주고 관계를 이어나갔던 사람에게는 오해를 풀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다. 나의 의도는 이러했고 사실은 아니나 오해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냥 적당히 알고 지낸 사람과는 오해인지 진실인지 여부를 일일이 따지려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는 편이지만, 계속 연을 이어나가야 할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불편해도 이야기하는 편이다. 지난 상황에서의 행동과 말에 대해 내가 서운했던 지점을 이야기한다. 보통의 경우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오해했다면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나도 그 순간 너무 예민했다며 오해를 풀게 된다.
나도 누군가를 오해한 적이 있었기에 억울한 오해를 사는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고심하며 썼다 지웠다 했을지가 헤아려진다. 그 말을 꺼냈다는 건 오해를 풀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거라 생각해 고맙다.
마흔이 넘었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늘 어렵다.
타인에게 무심한 편인 나는 대체로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사람을 만나는 편이다. 오랜 시간 만났어도 상대의 사생활이나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면서 했던 말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나와 상관없는 주제의 대화들에는 자주 혼자 멍 때리기도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려 애쓰는 편이어서 직장에서는 일만 하는 동료로, 모임에서는 그 모임의 목적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내가 마음을 주고 각별한 관계라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오해가 생기면 고민하게 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말을 할까 그냥 덮어둘까. 보통은 오해를 받는 쪽은 오해할만한 발언을 하는 경우가, 오해를 하는 쪽은 예민한 마음 상태인 경우가 많다. 오해를 받는 쪽만 혹은 오해를 하는 쪽만 전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말을 하고 풀어버리면 상대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든든한 관계가 된다. 상대를 이해하고 어떤 지점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니 상처 줄 일도 줄어든다.
말은 많아도 문제고, 적어도 문제다. 말은 늘 부족하지만 오해를 풀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다.
오해가 생겼다면, 오해를 받았다면 어찌 되었든 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