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동행 카드를 충전하고 있는데.
귓불에 솜털이 뽀송한 20대 여자의
음성이 뒤에서 들렸다.
그녀가 불쑥 나를 제친다.
" 제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요."
어느샌가 그녀의 희고 고운 반짝이는 네일아트를 한 손가락이
지하철 충전기 화면을 채운다.
나는 터치하던 손을 내려놓는다.
빛의 속도로 그녀의 손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그녀가 재촉한다.
" 결제할 카드 넣으세요."
얼떨결에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는데.....
아뿔싸 해필 거래정지된 카드를 주고야 말았다.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
화면에 카드사용불가라고 뜬다.
" 문제 있는 카드네요. 다른 카드 없어요?"
짜증 썩인 말투다.
순간 묘하게 기분이 짜릿해져서,
마그틱이 조금 손상돼서 됐다 안 됐다 하는
카드를 집어 들었다.
(미안하네 이번엔 고의라네 젊은이
나는 시간이 많고, 인내심도 많고 고약한 성격의 늙음을 바라보는 중년이라
젊은이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네....)
이번에도 화면에
카드사용 불가라고 뜬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고,....
좀 더 시간을 끌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다시 한번 더 해보세요.. 그럴 리가 없는데...
결국 좀더 시간을 지체하고 나서 기후동행카드충전은 끝난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하고, 지하철태그를 찍는다.
젊은이가 옆에서 태그를 찍고 힘차게 지하철 플랫폼으로 달려간다.
"이제는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
미안하네 젊은이. 그대 시간을 조금 뺏은 듯하네..
그래도 조금 기다려주는 배려를 다음부터는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네.."
문득 영화 은교의 명대사가 귀에서 뼈를 때린다.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