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두 시간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시스티나성당의 깊숙한 공간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마치 폐쇄공포증에 걸릴 만큼 빗장을 걸어 잠그고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에드워 그 버그 감독,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랄프 페인즈가 주연으로 열연했고 올해 오스카 각색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통합을 외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던 교황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
성직자들이라서 그런가
한 인간에 대한 추모는 영화 내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으로 거두어간 생명이니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마치 죽음마저도 죄인이 된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장례식보다는
새 교황선출이 더 큰 행사가 되야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슬픔은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죽음 앞에서는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성직자들의 표정은 엄숙함 뿐이다.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이 교황의 방에 몰래 들어가
생전교황의 유품들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슬픔에 나는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교황은 그저 죽은 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은 그의 인간적 정서에 녹여 들어가지 못한다. 교황이라는 권력만 보인다.
인간에게 슬픔이란 주관적이다.
너 나의 죽음이 가장 슬프고
그들의 죽음도 그 다음으로 슬프고
유명인이나 권력자의 죽음보다는
거리의 노숙자 죽음이 더 가슴 아프고 슬플 수 있다.
어쩌면 영화의 의도는 콘클라베 집중을 위해 슬픔을 축소한 듯 보인다.
전 세계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해야 하는데 콘클라베의 뜻은 바로 교황선출을 의미한다 교황이 사망하거나 물러나면 16~19일 사이에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새 교황
선출이 시작된다.
추기경들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빵과 포도주, 그리고 물만을 공급받으며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가운데 투표를 진행한다.
교황의 선거인인 추기경들이 외부의 간섭 없이 비밀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선거가 치뤄진다.
공정한 선거가 치루어지기 위해 그 어떤 외압이나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과반수 이상이 나올 때까지
끝장투표가 시작된다.
교황이라는 어마무시한 자리가 주는
종교 권력 앞에 성직자들의 추한 민낯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력한 후보자의 비리가 드러나도 대중의 가십과 의심이 두려워 덥고 가자는 추기경들.
교회의 권위가 진실과 정의, 한 인간의 양심 보다 중요하고. 서로의 자리보전을 위해 종교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리 교황이라도 좋다며 서로 공범이 되려한다.
모든 인간은 선할 수 없고 실수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성직자라고 해서 다를게 하나 없다.
비리를 저질라서라도 교황이 되는 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서로를 합리화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참담하고 황망한 현실 앞에서, 왜 지도자란 자가 최소한의 일말의 책임감, 부끄러움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저지른 일에 대한 정당성과 확신만을 강조 하고. 강력한 힘만이 안정된 권력을 유지하고 바른 통치로 이끌 수 있다는 망언에도,
우매한 민중은 마치 광신도가된듯 그런 정치권력을 향해 지지를 보낸다.
권력의이익이 나의 이익이라는 획신을 가지고 독재의 칼을 빼들어도 환호한다.
콘클라베를 주도하고 이끄는 단장, 주인공 토마스 로렌스(랄프 파인즈)가 콘클라베 첫날 투표에 앞서 선거인단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며
지금 우리가 귀기울이며 들어야할
이야기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서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엘리 엘리 라마 사 박티니)' 십자가에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 주십사 주님께 기도합니다. 죄를 짖고 용서를 구하고
실천하는 교황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