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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play Jul 18. 2024

낭만 10 ξ 올라갈 때 펴고, 내려올 때 굽히기

비가 멈춘 틈에 그네를 탔다.


장마 기간이라고 내내 비가 오는 건 아니다. 햇볕이 쨍하게 드는 날도 있고,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낫겠다 싶은 습한 날도 있다. 아이가 그네를 타러 가자고 한 오후는 연이어 내리던 비가 멈춘 때였다. 대신 보이지 않는 비가 잔뜩 고여 흐렸고, 습한 바람이 넘실대고 있었다.   

   

아이가 빨간색 그네에 타는 걸 보며, 초록색 그네에 앉았다. 앉아만 있기 뭐해서 바닥을 차고 두 발을 붕 띄워 다리를 폈다 굽히며 속도를 올리는데,

“엄마, 밀어줘.” 한다. 클라이맥스였는데.

아쉽지만 그네의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다리 대신, 팔을 폈다 굽히며 아이의 그네를 밀었다.   

   

“그렇지! 올라갈 때 펴고, 내려올 때 굽히는 거야.”     


아이의 그네를 밀 때마다 하는 말이다. 반년째 그네 독립을 시키려고 애쓰며 그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탈 줄만 알았지, 누군가가 그네를 배우는 모습을 오랫동안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네를 타는 건 다리로 노를 젓는 것과 비슷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과도 닮았다. 나아가려면 쉬지 않고 저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디서든 둥실 대고 떠 있을 수 있다.

    

아이는 한동안 점프해서 그네에 타는 걸 연습하더니, 몇 주 전부터 온몸을 튕겨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렇게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몸을 꿈틀댔는데, 아마 작은 몸으로 힘을 쓰니 그런 것 같다. 아이는 멈추지 않기 위해 온몸을 움직였다. 


그네를 밀 때마다 몸을 더 크게 앞뒤로 움직이고, 다리를 휘저었다. 몇 번 밀어준 게 마중물이 되어 자신감이 생기고 속도가 붙는 게 보인다. 그네는 옅은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삐걱삐걱. 그네 타기에 성공한 아이에게 ‘마중물’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쉬울지 고민하다가 나의 첫 마중물을 떠올렸다.  

     

할머니댁 마당에는 삐걱대는 펌프가 있었다. 위쪽 구멍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샘에서 끌어올린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그 물을 받기 위해 처음에 넣은 물이 ‘마중물’이라고 했다. 물을 데리러 가는 물. 

     

삐걱삐걱. 아이가 잠시 발 구르기를 쉬는 동안 그네가 서서히 멈췄다.   

   

“보민아, 마중물이 뭔지 알아?”

“마시는 물이야?”

“그런 건 아니고, 마중은 알지? 뭔가를 데리러 가는 물이야.”

“물이 데리러 가? 누구를?”     


나는 할머니댁 펌프를 설명하려다 그만두고, 결론으로 건너뛴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엄마가 아까 그네 밀어줬잖아. 높이 올라가기 전에. 

그런 게 마중물이야. 혼자 그네를 타기 위한 시작점 같은 거지.

듣고 있니?”     


아이는 다시 하늘을 향해 펌프질을 했고, 구름은 당장이라도 비를 데려올 것 같았다. 그네에서 내리며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이의 말이 습한 공기를 뚫고 명랑하게 날아왔다.

       

“엄마, 나 이제 정말 잘 타지?”

“응, 진짜 잘 탄다.”

“엄마가 마중 와서 그래. 이번에는 바꿔서 타자.”  

   

다 듣고 있었다. 이번에는 빨간색 그네에 앉아 바닥을 차고 두 발을 붕 띄워 다리를 폈다 굽히며 속도를 높였다. 가라앉은 바람이 떠올라 얼굴에 닿고 머리카락을 날린다. 시원했다.    

 

“사실 더 높이 탈 수 있어. 보여 줄까?”     


집에 가야 되는데 더 힘차게 발을 굴린다. 기대하는 아이 얼굴이 궂은 데 없이 맑고 환하다. 아이를 보며 버릇처럼 말했다.    

  

“올라갈 때 다리를 펴고, 내려올 때 굽히는 거야.” 

    

다리를 굽히며 그네가 뒤로 물러났을 때, 돌아보는 아이 얼굴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보인다. 

누가 그네를 타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곧 쏟아질 것 같은 비를 마중 나온 것처럼, 우리는 한참을 장마 사이에서 둥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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