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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나물 Aug 18. 2022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온 게 후회되지 않는 순간

 출국 전에 해야 할 일 중 가장 부담스러운 건 이사였다. 지난 4년 간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왔기 때문에 부담감은 더욱 불어났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왜 미니멀리스트로 살지 못했는가. 신나게 즐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후회가 조금, 아니 많이 밀려왔다. 집안을 둘러보며 대체 언제 다 치우나 싶어 한숨부터 나왔다.


 당근마켓에 올릴까. 그럼 돈이라도 좀 더 벌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팔아버리기에는 왠지 아쉬웠다. 물건을 사기까지 꽤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구매하기 전에는 무조건 남편과 의견이 일치할 때까지 논의를 했다. 몇 달이 걸리더라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하루가 어떻게 바뀔지, 다른 대체재는 없는지, 정말 필요한 건지. 고민했던 시간만큼 물건이 주는 편리함과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느꼈고 동시에 애정도 생겼다. 이 모든 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남편과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바로 부모님이었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부모님 댁에 가면 떠오르는 두 단어가 있다. 검소와 절약. 엄마는 휴지 한 장도 다 뽑아 쓰지 않는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찢어서 쓴다. 어머님은 동네 마트 할인 행사를 꿰고 계시며, 어디선가 커피 할인 쿠폰을 받아와 우리와 함께 나눠 마신다. 더우면 일단 에어컨부터 틀고 보는 우리와는 다르다. 집안 곳곳엔 그 습관들이 스며들어있다. 가구들은 구입한 지 최소 10년은 넘은 것들이다. 당시에는 비쌌지만 큰맘 먹고 산 가죽 소파, TV 밑에 있는 어두운 색의 거실장, 마지막으로 언제 조율을 받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피아노,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쓰던 책상 등.


 부모님이 가구를 구매할 땐 다음과 같은 우선순위를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가격은 합리적이며, 튼튼하고, 색상은 오래 써도 질리지 않는 짙은 갈색인 것. 이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만이 장바구니에 들어갔을 것이다.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미덕인 세대다. 그들은 신제품을 눈독 들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지 오래다.


 반면 나와 남편은 소비가 곧 정체성을 나타내는 사회에서 자랐다. 부모님과 달리 우리의 구매 기준은 디자인과 편리함, 혹은 호기심이었다. 직접 써본 뒤 좋은 제품이 있으면 부모님께 추천을 하지만 언제나 손사래 치며 거절당했다. 이번에야말로 부모님의 구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제품들을 문턱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우리 집 와서 찜해놔.
엄마: 어머님 먼저 내려가서 보시라 해. 그중에 남은 거 보고 가져 갈게.


남편: 우리 집 와서 가져갈 거 있는지 봐봐.
어머님: 우리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나물이네 먼저 가서 보시라 해. 남는 거 우리가 갖고 오면 되잖아.


 사돈 간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누구도 먼저 찜하지 않을 기세였다. 똑같은 대화만 10번 넘게 오갈 무렵, 우리는 네 분이서 같은 날 오시라고 통보했다. 경매를 열기로 한 것이다. 사실 경매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가격을 높게 부르는 사람에게 낙찰되는 게 아니라, 먼저 찜한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참여자는 단 네 명, 양가 부모님이다.


 당일날, 다 같이 점심을 먹은 뒤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각 집에 노란색 옥스포드 노트와 펜을 하나씩 드렸다. 말로만 하면 나중에 까먹으니 각자 가져가기로 한 물건을 적기 위해서다. 남편은 일일 영업사원이 되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소개했다. 처음엔 부모님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얘기하다가 점점 편하게 찜하기 시작했다.


“이거 가져다 쓰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럼 제가 가져갈게요.” 혹은

“아뇨, 전 괜찮아요. 있어요. 가져다 쓰세요”


 양보의 말이 오고 가지만 노트에 적힌 목록은 하나  늘어난다. 마트에서 봤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나쳤거나,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발길을 돌렸던 것들의 목록이다. 부모님은 물건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날 부모님은 예쁜  예쁘게 보았고, 신기한  신기하게 바라봤다. 밧줄로 꽁꽁 묶어 놓았던 호기심도 잠시 풀려난 모양이다. ‘어머, 어쩜 이런 것도 샀니,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 달 뒤, 양가 부모님 댁으로 이삿짐을 보냈고 두 집 모두 대대적인 정리에 들어갔다. 친정 부모님은 고동색 거실장과 오래된 TV를 버렸고, 시부모님은 오래된 황토색 소파를 버렸다. 밝은 색의 가구가 들어서며 집안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낯선 전자제품들은 그들의 사소한 생활 습관도 바꾸어 놓았다. 엄마는 난생처음 의류건조기를 갖게 되었다. 처음엔 옷감이 상하지 않냐며 걱정하더니 장마철이 되자 2시간 만에 보송보송한 이불보가 나온다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어머님은 발 옆을 지나가던 물걸레 로봇 청소기를 보며 말씀하신다. “나는 얘를 볼 때마다 얼마나 예쁜지. 소리도 안 내고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는 게 너무 예뻐. 꼭 나물이 같아.”


 당분간 방문하지 못할 그곳에 우리의 흔적을 잔뜩 뿌리고 왔다. 먼 곳으로 떠나기 전 부모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다. 먼지 쌓이고 손때 묻은 우리만의 사랑이다. 그것들이 부모님의 하루를 편리하고 밝게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도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 물건들을 잘 쓰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의 부모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시큰하고 동시에 기쁘다.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온 게 후회되지 않는 순간이다.



※ 매주 목요일 밤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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