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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나물 Aug 25. 2022

결혼 후에 부모님과 살면서 느끼는 것

출국 전 부모님과 동거하기

 나와 남편은 대학교에서 눈이 맞았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그걸 핑계 삼아 영화도 보고, 연애도 하고, 나중엔 결혼도 했다. 직장으로 인해 대전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주말엔 데이트도 할 겸 부모님도 뵐 겸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때마다 각자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잤다.


 출국까지 한 달 정도 남았을 때였다. 살던 집을 비워야 했고, 당장 잠을 잘 곳이 없었다. 결국 남편은 시댁에서, 나는 친정에서 지내기로 했다. 당분간 입을 옷과 생필품을 넣은 캐리어를 끌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한때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곳으로.


 낯선 현관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건 언제나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이다. 문을 열자 난장판이 된 집이 보였다. 거실부터 신발장 앞까지 이삿짐 박스들과 익숙한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이삿날까지 미처 짐을 정리하지 못한 탓에 버리려던 물건들이 여기까지 실려와 버린 것이다. 찜한 물건들을 주겠다더니. 집 내부는 겨우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아있었다. 대전에서의 포격으로 인해 서울의 피해 현장은 처참해진 상태였다. 피해 정도를 파악하는 동안, 포격의 잔해 속에서 피해자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엄마 아빠의 표정은 밝았다. 딸이 집에 오는 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지낼 기간은 길어야 한 달. 헤어질 날이 정해진 이 동거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렸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지내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린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게 충실했다.


 엄마는 부지런히 장을 보았고, 해외에서 먹지 못할 음식들을 만들어주었다. 소고기 미역국이나 멸치 볶음, 각종 나물 무침 등등. 나는 덩치 큰 아기새가 되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엄마의 음식은 여전히 싱거웠지만 맛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고기 핏물을 빼는 시간, 찬물에 나물을 헹구느라 시린 손,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김치 냉장고를 열어 배추 한 포기를 자르는 수고 같은 것들. 양껏 먹었어도 한 두 숟갈 더 떠먹었다.


 아빠는 저녁 설거지가 끝나면 매일 족욕기에 물을 데웠다. 발에 굳은살이 배긴 엄마를 위한 일이었지만, 깨끗한 물에 제일 먼저 발을 담그는 사람은 나였다. 족욕기 안에는 가끔 솔방울이 두어 알 들어있었다. 아빠의 작은 서비스였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솔향이 솔솔 올라왔다. 십분 남짓의 테라피.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수면 위를 발바닥으로 찰싹 때린다.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어 바닥이 엉망이 된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 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난리를 치냐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말투 속엔 어떤 짜증도 미움도 없었다. 애정만 담긴 잔소리를 듣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나. 어느새 족욕의 목표는 심신 안정도 아니고 피로 회복도 아닌, 아빠 잔소리 듣기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 밤 나는 참지 못하고 발을 첨벙 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부모님은 매일 저녁마다 동네 산책을 나갔다. 가끔은 따라나섰고 피곤한 날엔 집에서 쉬었다. 하루는 고등학교 친구와 동네에서 저녁 약속 있던 날이었다.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카페 마감 시간이 다 되어 헤어졌다. 부모님이 산책을 하고 있을 시간이길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야?”

“아직 밖이야. 집 쪽으로 걸어오면 돼”

“어느 길로 가면 돼?”

“그냥 오면 돼”

“아니, 어느 방향으로 가? 횡단보도 건너야 될지 말지 모르잖아. 정확한 위치를 좀 알려줘.”

“그냥 와~”


 어디냐고 물어봐도 두루뭉술한 대답만 돌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간판이라도 말해주면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서너 번 물어봐도 그냥 오라는 말 뿐이었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짜증을 내기 직전, 눈앞에 아빠가 서있었다. 엄마는 숨으려고 했는지 멀찍이 떨어져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니, 왜 말도 안 하고 왔어. 약속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면서.”

“우리도 이제 막 도착한 거야. 늦게 끝나면 요 동네 산책하고 있으면 되지.”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카페가 더 늦게 마감했으면 어쩌려고. 날도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마음속으로 궁시렁대며 뒤따라 걸어갔다. 가는 길에 집 앞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에 들렀다. 아빠는 400원짜리 아맛나 열 개를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으며 들으라는 듯 말했다. “누가 자꾸 뺏어먹는 것 같애. 이렇게 많이 사도 금방 없어져.” 장난기 섞인 애정 어린 말투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맛나를 먹었다. 단 맛이 나는 하얀 부분을 천천히 빨아먹는다. 어렸을 땐 팥 들었다고 싫어했는데 언제부터 이리 맛있어진 건지. 앞으로 아맛나를 몇 개나 뺏어먹을 수 있을지 세어본다. 엄마의 밥상도, 족욕도, 아맛나도 누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짧은 일기를 썼다.


 딸과 우연히 마주치려고 마중 나오는 엄마 아빠의 발걸음은 어떤 리듬이었을까. 이미 한두 바퀴 돌고 온 걸 지도 모르지. 이 온기 가득한 사랑은 날 무장해제시킨다. 나 해외 나가면 어쩌려구, 얼마나 아쉬워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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