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1박 2일로 놀러 가실 때면 버터치킨커리를 끓여놓곤 했다.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 부드럽고, 버터의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 인도식 커리다. 나와 남편은 아무도 없는 시댁에 들어가 밥 한 공기에 커리를 한 국자 퍼서 비벼먹곤 했다. 엄마가 카레를 끓여놓았다며 남편을 따라 처음으로 빈 시댁에 갔던 날, 냄비 뚜껑을 열자마자 놀랐다. 당연히 노란색 일본식 카레일 줄 알았는데 낯선 향신료 향이 뿜어져 나오는 주황색 카레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커리 말고도 낯선 음식들을 자주 만들었다. 소금과 다시마로 절인 연어 곤부즈메, 실란트로(어머님은 고수를 언제나 실란트로라고 부르신다.)를 듬뿍 넣은 토마토 마리네이드, 어향가지 등등. 메뉴가 다양하면 맛이 떨어질 법도 한데 맛은 언제나 평균 이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래서 어머님은 늘 바빴다. 냄비가 타지 않게 뒤적이고, 양념장을 만들고, 냉장고에서 어떤 반찬을 내올지 기억해 내야 했으니까. 아버님은 부엌일을 도와줄 때도 있었고 거실 소파에 앉아 야구 경기를 시청할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부엌일을 도맡는 건 어머님이었다.
결혼 초, 어머님이 저녁 준비를 할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동선만 방해하겠지만 구경만 하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억 속 며느리는 부엌과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친할머니댁에서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밥상이 차려지기 전까지 뒷모습만 보이던 모습. 가족들이 배를 두드리며 거실에 앉아 다 같이 얘기를 하는 동안 홀로 설거지를 하는 모습. 쟁반에 과일을 담아와 껍질을 깎으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듣는 모습. 그 모습들이 떠오를 때마다 슬그머니 부엌으로 가 어머님께 도와드릴 건 없는지 물어봤다.
어머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처음엔 그 말을 듣고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방에 들어가 있어도 문틈 사이로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나 칼이 도마에 닿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괜히 물 한 모금 마시러 나가 다시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됐다며 나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남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든 적도 있었다. 밥이 다 됐다는 외침이 들리면 그제야 방문을 열고 나갔다.
식사를 할 때 어머님은 부엌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릇에 바닥이 드러나면 음식들을 더 덜어오기 위해서다. 어머님 오른편에는 남편이, 맞은편에는 아버님이, 대각선에는 내가 앉았다. 내 자리는 부엌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우리는 막걸리를 곁들여 마시면서 지난주에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가끔씩 어머님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우리 메느리 오니까 더 맛있네~."
"아니, 왜 며느리라고 해?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어머님은 단호했다. 아버님이 날 '며느리'라고 할 때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화를 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음식에서는 김이 폴폴 올라오고 있는데 식탁 분위기는 냉랭했다. 아버님은 좋은 의도로 며느리라 불러도 혼이 났고, 애정을 담은 말투로 말해도 혼이 났다. 이 집에서 '며느리'는 금기어였다. 아버님은 그 사실을 자주 까먹었다. 몇 주가 지나면 아버님은 또 혼이 났다.
"내가 저기 그 친구한테 뭐라 했냐면 우리 메느리가 "
"그러지 말라니까? 그냥 예은이라고 해."
아버님은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또 혼이 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던데. 무슨 말만 했다 하면 귀가 따가우니 말 한마디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호칭은 '우리 예은이'다. 기분이 좋을 땐 '예쁜 예은이', 기분이 많이 좋을 땐 '우리 예쁜 예은이'라고 한다. 간혹 가다가 깜박하고 본인도 모르게 며느리라는 말이 튀어나오는데 어머님은 매번 넘어가는 법이 없다.
어머님은 기분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도 한결같다. 이름 두 글자로 나를 부른다. '우리'나 '예쁜'같은 수식어도 없다. 그냥 예은이. 처음에는 혼이 나서 풀 죽은 아버님이 마음에 걸렸다. 매번 저렇게까지 뭐라고 해야 하나 싶다가도 어머님의 단호함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 것 같아 가만히 밥만 뒤적였다. 아버님은 몰랐을 것이다. 며느리라고 불리면 평소보다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을. 잇몸이 보이지 않게 웃어야 할 것 같고, 밥을 다 먹고 나서 사과를 담아와 껍질을 예쁘게 깎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어머님 덕분에 나는 그냥 예은이었다. 며느리와 딸과 손님 사이의 어딘가. 담백한 호칭은 며느리가 으레 하는 일들을 잊게 만들었다. 그냥 예은이어서 부엌에서 상을 차리지 않아도 됐다. 그냥 예은이어서 어머님이 깎아주는 과일을 먹고, 혼자 방에 들어가 낮잠도 잘 잤다. 그냥 예은이어서 저녁은 같이 먹되 잠은 친정에서 잤다. 시댁을 시댁이라 부르지 않고 어머님네 혹은 아버님네라고 부르게 됐다.
어느 주말, 어머님이 재운 갈비를 구워 먹은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밤 9시쯤 친정으로 돌아가 엄마랑 거실에서 귤을 까먹었다.
"엄마, 그거 알아?"
"뭐?"
"어머님은 날 며느리라고 안 부른다? 그냥 이름으로만 부르셔."
"왜?"
"왜 그런 거 있잖아. 며느리라고 하면 뭐 해야 될 것 같고.."
"으응, 그지 그런 게 있지."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어머님네만 가면 낮잠이 그렇게 잘 온다?"
"그래두 그럼 안되는데... 누구 딸인지 참."
엄마는 얘가 이래도 되나 싶다. 신기하고 고맙고 다행인데, 여러모로 복잡하다. 고개를 저으며 귤을 몇 알 더 입에 넣었다. '애미야'로 불리던 이는 볼 한쪽에 귤을 밀어 넣고 과즙을 터트리며 말했다.
"것두 복이야."
"그치 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