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에 산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독일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독일행이 결정 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독일에 대해 찾아보는 일이었다. 구글과 네이버, 유튜브 등 온갖 플랫폼에 다음과 같이 검색했다. 독일살이, 독일 브이로그, 독일 음식, 독일 여행, 독일 집 구하기, 독일어 등등.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이 작성한 글이 많았다. 식당에서 주문하는 법부터 행정 처리에 필요한 서류까지. 정보가 쏟아졌다. 이것저것 클릭하다 보니 어느새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깻잎 씨앗을 나눠준다는 글까지 찾았다. 놀라웠다. 거주하는 한인 수가 적은 크로아티아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보를 얻으려면 한글이 아닌 영어로 검색해야 했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궁금한 부분을 서로에게 묻고 댓글로 답해주는 공간이 있다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렇게 독일에 대해 찾아보는 일에 빠져들었다. 특히나 이민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유튜브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아침에 씻으면서 유튜브로 독일에 대한 영상을 봤다. 독일에 가기 전 알아야 할 N가지를 알게 되었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봤다. 독일에서 월세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며칠이 지나자 유튜브엔 독일 관련 영상이 첫 번째로 나왔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영상의 제목이 있었다.
독일 이민, 정말 좋을까?
역이민을 하게 된 이유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적응하고 사는지.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영상을 클릭했다. 화면 너머로 고충들이 흘러나왔다.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모를 생생한 경험담이었다. 사기를 당했다고 하면 주변 지인이 겪은 것처럼 안타까웠다. 어쩜 저런 일이 있냐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15분 남짓한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새로운 영상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유튜버가 또 다른 독일의 현실을 알려주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사람의 현실은 어땠을까.
그렇게 일주일 내내 수많은 독일의 현실을 마주했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이 곧 내가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별별 사건들을 겪은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곧 독일의 ‘현실’을 겪게 될 것만 같았다. 선진국의 대표주자인 독일에서, EBS 다큐에서 언제나 모범사례로 꼽히던 독일에서 어떤 불합리하고 이상한 일을 겪게 될까.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제일 먼저 눈치챈 건 남편이었다.
“너도 독일 가는 거 좋아?”
“응 좋지.”
“정말 좋은 거 맞아?”
남편이 되물었다. 좋다고 말하는 나 자신도 어딘가 떨떠름했다. 입으로는 좋다고 말하면서 말투는 ‘뭐, 그냥 가는 거지’였다. 남편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냐고 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슬쩍 넘어갔다.
다음날, 점심 식사를 준비하며 유튜브를 틀었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독일 이민의 현실을 알려주겠다는 영상이 떴다. 심지어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의 영상도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타인의 인생을 너무 많이 훔쳐보고 있었다는 것을. 몇 달 전에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 들어본 적 있어? 포모(FOMO)랑 조모(JOMO)라고. 포모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래. 온라인에서 혼자 소외되는 걸 두려워한다는 사회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야. 반대로 조모는 Joy Of Missing Out. 기꺼이 잊혀진다는 말이지. 너는 뭐에 가까워?"
"나는 당연히 조모지!"
한 치의 의심 없이 아주 당당히 대답했다. 시도 때도 없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나만큼은 한 발짝 떨어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틈만 나면 유튜브가 추천해 주는 이민 영상을 챙겨보고 있었다. 유튜브는 새로고침 할 때마다 코스요리처럼 영상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줬고, 나는 그걸 빠짐없이 시청했다. 왜 그랬을까. 다 보고 나면 실패하지 않는 독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은 걸까. 남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던 걸까. 타인의 경험이 나와 같을 수는 없는데. 중독된 것 마냥 계속 유튜브만 본 스스로를 이해할 수도 없고 한심했다.
힌트를 얻고 싶었다. 찜해두었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보았다.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사람들을 중독시키는지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보면서 낄낄대고, 더 재밌는 컨텐츠를 추천해달라고 화면을 아래로 당겨 새로고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알고리즘은 우리들의 시선을 최대한 오래 붙잡아 놓기 위해 정교하게 영상들을 배열하고 있었다.
유튜브 추천 영상 분야에서 일했던 인터뷰이는 말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자신에게 필요한 걸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눈을 끌 만한 것을 찾는 거고 당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비디오 중 하나를 보게 되면 계속 반복해서 추천할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눈길이 가는 영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일단 썸네일과 제목이 자극적이었다. 날 걱정해 주는 듯한 근심 어린 표정.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필요한 걸 알려줄 듯한 제목. 영상을 보지 않으면 너만 손해라고 외치는 듯한 뉘앙스. 불안함을 자극하기에 제격이었다. 그런 영상은 보면 볼수록 불안해졌고, 비슷한 다른 영상을 보며 또다시 불안함을 키웠다.
더 이상 알고리즘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자극적이고 편향된 영상을 보면 '채널 추천 안 함'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독일에서 마주할 '현실'이 꽤 좋아 보였다. 별것도 아닌 일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어 허탈했다. 다시는 알고리즘에 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보이는 대로 클릭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자고, 현명하게 이용하자고 되새겼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싸워야 하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걸까. 슬슬 누르고 싶어지는 영상이 보인다. 이번엔 재테크다. 대 폭락장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던가, 십 년 만에 큰 기회가 왔다던가. 저 사람들은 어떻게 투자를 하고 있을까. 아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