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자 엄마의 돈 되는 잔소리④
네가 운다. 온 힘을 다해서 운다.
단지 라면 하나 삶아주지 않았을 뿐인데. 그 라면이 학교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부터 그렇게 먹고 싶었다며 아주 서럽게 운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 라면은 주말에만 먹자고 그렇게 약속해 놓고선, 세상을 다 잃은 듯 한 너의 울음에 나는 또 진라면 순한맛 라면 봉지를 뜯는다.
어느 기사를 봤다. 3살 아이가 혼자 빌라에 방치돼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널 낳고 아이들과 관련된 좋지 않은 기사를 보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그날도 스치듯 본 기사 창을 끄려던 순간, 한 문장을 발견했다.
'친모인 김 씨는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도 울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이상하게 그 문장이 계속 머릿 속에 멤돌았다.
아이는 왜 집에 혼자 있어도 울지 않았을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울지 않는 아이었을까, 울어도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 울지 않았을까. 기사엔 그런 내용이 담길 리가 없으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기사로 전해지는 팩트. 누군가 죽고 죽이는, 또 폭행을 가하고 폭행을 당하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사라면 구구절절한 내용들이 기자의 취재를 통해 기사에 담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건들은 그저 단신으로 마침표가 찍힌다. 그 아이의 죽음과 관련된 기사도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가끔 난 무심하게 쓰인 팩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아마 내가 기자와 작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겠지.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도 울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혼자 상상을 하다가 내 멋대로 가슴 아픈 결론을 내렸다. 그 아이는 처음에는 울었을 것이다. 우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지. 그 에너지를 쏟아내고도 변화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그 때부터 울지 않았을 것이다.
눈물의 무력함.
2020년은 내 삶에서 가장 고단했던 한해였다.
네 동생이 뱃속에 생기면서 입덧이 심했어. 입맛이 뚝 떨어진 상태에 새벽에 출근을 하고, 하루를 견뎌 퇴근을 하고, 이미 에너지가 모두 빠진 상태에서 너를 돌봤지. 그렇게 널 재우고 다시 노트북을 켜서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논픽션 원고 작업을 했다. 임신도, 직장도, 너도, 책 계약도 모두 내가 내 선택이었으니 누굴 원망하며 화를 쏟아낼 여지도 없었다. 그 막막한 상황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괜히 눈물을 흘려 에너지를 더 소비해 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울음이 북받칠 때면 그저 켜진 노트북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물은 무력하다. 그냥 일이나 하자.
그렇게 몇 개월을 버티고 어느날 새벽이었지. 자는 중에 펑펑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슬픈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그 울음이 너무 서러워 그치질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안에 눈물이 많이 차 있었다는 것을.
쏟아내야 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그 눈물이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더구나.
네가 웃는다.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라면을 후루룩 먹는다. 라면 하나로 널 웃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언젠가, 누구도 네 눈물을 닦아 줄 수 없을 때가 너에게도 오겠지.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쌓인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일은 하지 말아라. 네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눈물은 값진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