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쩔기자 May 01. 2023

딸에게 시크릿쥬쥬 말고 주주에 대해 알려주는 아빠

경제기자 엄마의 돈 되는 잔소리⑥

월요일 아침, 너와 같은 8살 나이의 한 여자 아이를 만났다. 삼성전자 주총장에서였지.      


나는 삼성전자 주총을 취재하러 갔고, 그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주총장을 찾은 어린이 주주였어. 주총이 끝나고 나는 네 생각이 나 그 꼬맹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수줍게 나를 쳐다봤던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 "아줌마도 너랑 같은 아이가 있는데 말이야. 주총에서 기억에 남는 게 뭐야?". 그 아이는 기쁜 듯이 말했어. "찬성 버튼을 눌렀는데 그게 통과돼서 너무 기뻤어요!". 주총 안건에 대해 스스로 투표에 참여한 것이 그 아이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던 거야.     


자본주의의 꽃이 무엇일까.      


그 아이 아빠는 말했어. "자본주의에 대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자본주의 꽃이 주식회사잖아요. 그래서 주총장에 아이를 데려왔죠!". 주식회사. 주식 발행으로 설립된 회사. 주식회사의 주인은 돈을 지불하고 회사 주식을 산 주주들이다. 그리고 그 주식회사에선 1년에 한 번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경영 수익을 주주들에게 얼마나 돌려줄 지에 대한 결의를 한다. 그 아이가 찬성 버튼을 눌렀다는 것은 주총에서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의미기도 하지. 올해로 8살이 됐다는 그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새로운 곳에 와 뭔가를 눌렀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겠지만.     


"시크릿쥬쥬 말고 아이에게 주주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아이 아빠가 말했다. 말끔한 정장을 빼 입은 아빠는 회사까지 빼 먹고 아이에게 자본주의를 가르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주총장에 온 거였어.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에 잔뜩 쌓인 시크릿쥬쥬 장난감들이 떠올랐다. 시크릿쥬쥬 댄스머신과 시크릿쥬쥬 거울, 시크릿쥬쥬 노트북, 시크릿쥬쥬 스티커. 부지런히 장난감을 사들였지만, 이미 네 기억에서 잊혀져 방치되고 있는 그 장난감들 말이야. 나는 너에게 지갑을 여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잠시 스칠 너의 욕망을 채우는 일엔 충실했지만, 내 시간을 할애해 시크릿쥬쥬보다 큰 세상을 보여주는 일엔 소홀했던 것은 아닐지 스스로 반성을 했다.     



대학 때 난 아르바이트를 참 열심히 했다.      


칼국수가게 서빙부터 분식집 서빙, 롯데월드 게임장 아르바이트. 대부분이 몸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이었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난 그동안 해 보지 못 했던 노동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싶었다.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겠다는 계획도 세웠지. 그런데 하루 10시간 넘게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도 여행은 고사하고 1달 쓸 용돈을 버는 것도 빠듯했다. 방학 때 두 달 동안 꼬박 아르바이트를 해야 간신히 동남아 여행 한번 갈 수 있는 돈이 마련됐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에 입사해 증권부와 부동산부, 산업부를 거치며 돈이 돈을 버는 세상과 마주했다.      


입으로 투자자를 모으고 클릭 몇 번으로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버는 전업 투자자. 돈 되는 부동산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 부모에게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고 노동의 가치 따윈 알 리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오너 일가의 삶. 노동의 가치는 숭고하지만, 숭고한 가치만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아이에겐 일찌감치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우리나라에선 아이들이 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있는듯하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선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자본주의에 대해 교육하고 주식 모의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해. 만약 내가 돈에 좀 더 일찍 눈을 떴다면 나에게 맞는 투자 방식을 일찌감치 터득해 돈을 벌고 너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삼성전자 주총장에서 그 아이와 대화를 하며 네 이름으로 들어왔던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삼성전자 주식을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가가 올랐을 때 주식을 팔아 카카오에 투자했던 것도 말이야.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주식 수익률이 마이너스 30%였던가. 언제쯤 그 주식을 뺄 수 있을까. 일찌감치 너에게 하는 양심고백. 나중에 너도 내 만행을 알게 되겠지. 용서하렴. 아무래도 금융 교육이 필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달에 150만원 영어유치원에 다닌다는 것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