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실행: 20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비행기표 대신에, 호텔 말고. 작가 실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by 옹봉

왜 하필 도미토리였을까?

나에게 필요한 건 여행지가 아니라, 출근지였다. 일상을 벗어나되, 동시에 다시 일상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주변 경관도, 근처 맛집도 중요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조건들을 하나씩 지우고 나니, 남은 선택지는 여기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낯선 곳에서 나만의 '작가 출퇴근 루틴'을 새롭게 설계해보고 싶었다.


휴가를 냈고, 비행기 표는 끊지 않았다.
예약해 뒀던 춘천의 끝내주는 자연 속 에어비앤비도 취소했다.

남편은 시댁으로 보냈다.


그저 일상의 연속처럼 느껴질 요소들을 모두ㅡ 걷어냈다.




이건 단순한 쉼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10년 가까이 쌓여온 직장인의 관성을, 오직 내 의지로 무너뜨려보려는 시도. 그 관성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여기에는 엄청난 동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비범한 각오로 휴가 계획에 임했다.


남편이 추천한 청산도의 ‘슬로시티’는 지금쯤 유채꽃이 한창일 환상적인 섬이었지만 나에겐 지금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구례, 여수, 괴산, 구미, 홍천... 한국에 한적하고 아름다운 숙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감탄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숙소들이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뤘다. 지리산 산기슭, 피아골 계곡의 독채 펜션은 도시 살이에 지친 영혼들이 세상과 분리 돼 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단절’보다는 ‘전환’이었다.


너무 멀리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동 시간조차 글쓰기의 기회비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일상보다는 낯설면서도 비일상적이지는 않은, 일상의 근교이길 바랐다. 남편도 나를 따라 휴가를 냈지만, 비장한 각오로 일종의 사회 실험을 계획하는 건 나 혼자였으므로...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남편은 남편만의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양평, 춘천, 횡성으로 후보지가 정리되었고, 남편의 추천으로 결정된 최종 픽은 춘천이었다.


그런데 떠나기 이틀 전, 남편이 물었다.

“자기는 가서 글만 쓸 거야? 숙소에서도 쓸 공간 있나?”
“숙소에선 안 써. 나는 출퇴근하고 싶어. 작가로 출근하고 퇴근할 거야. 점심이나 저녁은 같이 하자.”

“… 거기까지 가서 카페에만 있는다고?”

‘거기까지 가서’라는 말에서,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테스트였으므로,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남편은 나의 결정을 응원해 줬다. 그 김에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했다.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흔들리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았다.

“미안해, 이번엔 진짜 나 혼자 해야 할 것 같아. 부산은 다음 주에 같이 가자.”


그렇게, 휴가 전날 밤ㅡ 나는 명동의 20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조식 포함 조건으로, 도서관이나 카페가 가까운 곳. 딱 1자리 남아 있던 그곳을 잡았다.


1박 42,000원. 4박 5일. 총 168,000원.

호텔 1인실도 있었지만, 그건 왠지 사치 같았다. 지금은 여유를 즐기며 호화롭게 지낼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첫날밤에 바로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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