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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Feb 26. 2023

86세 노인에게 장기화재보험을 판매한 은행

노인의 이름으로 저축하지말아야 하는 이유

시어머님과 시댁식구들과 함께 오리집을 찾았다.

당일 시아버지의 병원과 은행일을 다 보고 난 뒤 늦은 점심이었다.

어쩌다보니 조부모와 함께 살아왔고 그 덕분에 할아버지와 더 돈독한 정을 쌓았던 시조카가 병원이고 은행이고 운전을 도맡았는데 그 날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뭐 먹고싶냐? 너 생일이니 너가 먹고싶은 것을 골라라"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란 말끝에 도착한 곳은 지난 해 어버이날 찾았던 오리집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식당안을 둘러본다.

불과 몇 달 전 이 식당, 바로 저 자리에서 시아버지가 맛있다며 드셨는데

당분간, 아니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없던 효심이 불쑥이다.


고령의 노인이란 참 한 치앞을 내다보지못하는구나


시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나빠지기시작한 건 음식이 식도에 걸린 탓이었다.

소화불량은 당연하고 식사를 못하시니 기력이 하루가 다르게 잃어갔다.

동네병원에서 대형병원으로 옮기시고나서야 식도에 걸렸다는 음식도 나오고

심한 역류성식도염인 걸 알게되었다.


식도에 걸렸다는 음식을 빼내다니

정말 의료진들은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싶어 존경심도 든다.


그러나 그게 노인에게는 큰 일이었고 고비의 시작이었다.

이후 잠깐의 회복이 있었다만 결국 또 병원행, 다시 또 병원행을 거듭하고나니 고령의 노인은

노환, 그것도 급격하게 진행중이다.


시아버지를 포함 시댁은 식탐이 많은 편이다. 많이 드시고 잘 드시고 소화도 잘되시고

심지어 고기위주의 식단임에도 콜레스테롤은 150도 안되는 특이한 체질이다.

그에 비함 난 " 도데체 많이 먹지도않는데 왜 살찌지?" 란 의심을 받을 정도로

적게 먹음에도 콜레스테롤 경계수치가 넘은지 오래다.

식습관의 큰 차이때문에 메뉴고를 때 어느 한 쪽은 손해를 보거나 양보를 강요당하는등

갈등이 적지않았다.


이번 시아버지를 통해 병원에서 알게 된 결과는 콜레스테롤이고 뭐고간에 야식이 너무 너무 좋지않다는거다.

우리몸을 매일 내시경처럼 볼 수 있다면 몸에 좋은 것만 먹겠구나란 경각심도 가지게했다.


시아버지의 노환이 그렇게 시작되어 차도가 없는 와중에도

아니, 움직이기 어려우니 마음이 편치않은 게 있단다.


얼마되지않는 은행잔고

유고시 자식들이 그 돈을 찾지못할까란 불안감을 비추셨다.

아무리 설득해도 당신이 살아계실 때 직접 가서 해결해야한단다.

시아버지보다는 훨씬 젊은 자식들이 은행에 물었다.

" 본인이 움직이기어려운데 은행일을 어떻게 봐야하나요?"

들려오는 대답은 두 가지다.

살아계실 때 본인이 나오시던가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나오던가

은행원이나 비은행원이나 알고 있는  건 똑같다.

그 즈음 k은행에 사설앰블런스를 타고 은행에 나온 환자가 있었다.

본인확인을 꼭 해야하는데 어르신은 심장이상이던가 도저히 병원밖을 나설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은행에서 본인확인은 내점원칙이란 원칙을 고수한 때문이었다.


우리가족도 별반 힘없다.

결국 두 사람이 부축을 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은행에 도착했는데

시아버지는 예금을 해지않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몇 개월만 지나면 이자가 얼마인데..."

아들과 딸, 한 마디로 직계자녀의 권유, 간청에도 노인의 고집은 대단했다.


힘들게 나갔던 은행업무는 커녕 더 환자가 되어 귀가했고

시아버지는 아무래도 찝찝하셨는지 며칠 뒤 다시 은행일을 해결해야한다며 자식들을 불렀다.


사실, 당신은 잊고 있었고 자식들은 알지못했다.

그 통장은 이미 통장이 아닌 빈 텅장이었다

담보대출을 받은 정기예금이었는데 이자생각만 하셨던거다.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부축을 해서 병원과 은행을 오가던 날

화가 났다.

정기예금 통장이 텅장이 되어있는거야 시아버지가 쓰셨으니 할 말 없다만

올해 87세이신 당신이 작년부터 가입해 현재까지

14회차를 부은 보험이 있단다.


그것도 10년이 넘는 장기화재보험이고 월 10만원이라니 기가 막혔다.


"승계도 안되나요? 지금 해약하면 얼마나 나오나요? 14회차. 140만원을 넣었는데 50만원 정도요?"


시아버지의 집은 경기도 끝자락, 적은 평수의 오래된 아파트다.

화재보험

그럴 수 있다.

노인이니 혹시나 가스불을 끄지않아 화재낼 수 있으니 필요할 수도 있겠다만

10년이 넘는 장기화재보험을 그것도 86세 노인에게 판매했다니 스멀스멀 화가 났다.



은행에서 좋다고하는데 자식들한테 얘기해봐야 싫은 소리나 들으니

자식에게 의논하나 없이 가입했을 상황이 그려졌다.


묻고싶었다.

" 아무리 100세 시대지만 10년이 넘는 장기화재보험을 86세 노인이 가입하는 경우가 많나요? 그것도 노령연금 30만원 받는 노인에게요?"




"내가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텅장을 해약하고 보험도 해약한 날

시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적은 금액이지만 당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던 과업이었다.



혼자 사시는 노인들이 간간히 함께 살지않는 자식과 싸우는 일이 있다.

" 아니, 이 싸구려를 비싸게 사셨다구요? 이 효험없는 약을 얼마에 사셔다구요?"

경로당에 찾아 온 위문공연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간 노인교실에서 재미난 공연 몇 개 보고

효능이 좋다고 산 건강식품, 건강보조제, 건강팔찌, 건강장판,

건강이란 말만 갖다붙혔을 뿐인데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주고 샀다란 말에

자식들, 화가 난다.

TV에서 건강00을 판매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 외로운 노인들 솔직히 자식들이 우리처럼 웃겨주고 즐겁게 해주나요? "


작고하신

나의 친정어머님도 분명 노래교실이라고 갔는데 양 손에 자라인지 달팽이인지 정체모를 건강식품을 두 박스나 들고 오셨는가하면

시아버님은 노인위문공연이라고 간 장소에서 러시아크루즈여행상품계약하고 오시기도 했었다.


외로운 노인들 솔직히 자식들이 우리처럼 웃겨주고 즐겁게 해주나요

그 판매원의 말도 부정할 수 없다.

자식들에게 월 10만원의 화재보험을 말하지않은 것은

말해봐야 자식들은 화부터 낼 게 뻔하다는 걸 알기때문이다.


당신이라고 왜 생각이 없을까

우리가 아직 되어보지않은 87세의 나이에도

여행가고싶고

건강해지고싶고

안전하고싶은 것을

자식들은 판매원이나 은행원처럼 친절하지않다.

무조건 화부터 내고 하지말라고 하니

노인들, 입을 다무시는 이유다.


그럼에도

내 부모라고 한다면

그렇게 건강팔찌에 건강이란 글자만 갖다붙힌 제품을 몇 백씩 팔까싶기도하다.

그들도 부모님이 계실 텐데 과연 자신의 부모들에게

그런 제품을 "자식들에게 절대 얘기하지말고 사라" 란 말과 함께

팔까란 생각이 든다.


장기화재보험,

승계도 안되고

중간에 해약해야 돈도 안되는 장기화재보험

무슨 생각으로 86세의 고령의 어르신이 가입하려고 했는지

한 번만 더 물어봐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 승계도 안되고 중간에 해약하면 손해란 사실, 당신의 도장과 날인이 있으니

고지의무는 다했더라도

한 번만 더 물어봐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은행일을 직접 보신게 마음이 편하신지

" 이제 여한이 없다"리고 하신다.


통장이 아닌 텅장에서 나온 얼마를 자식들에게 쥐어주니 기분이 좋으시단다.

중도해약한 보험에 대한 손해는 생각하지못하시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괴로워 이야기하지않으시는지 모르겠다.


자주 찾아뵙고 웃겨주는 자식이 아닌 게 속상하다.


작년 어버이날, 시부모님과 함께 한 오리집은 당분간은 가지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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