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원 Jul 15. 2017

'1메다 80'은 과연 얼마나 되는 길이일까?

'표준'은 절대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학생 개인이 해간 과제 발표와 크리틱 위주의 미대 수업 특성상, 교수님이 앞에서 대부분의 썰을 푸시는 강의는 드물기 때문에 어떤 수업이나 교수님의 가르침이 기억에 남으려면 자신을 비롯한 누군가의 과제가 되게되게 인상적이거나 또는 따끔하게 혼이 나거나.


어떤 작품의 dimension을 언급할 때 cm 단위로 발표했다가, 세상천지에 industrial designer가 그런 단위를 쓰는 경우는 없다고 혼쭐이 난 덕에 지금까지도 회의 석상에서 누가 cm로 얘길하면 난 상당히 민감하게 나서서 정정하는 편이다. 특별한 언급없이 숫자만 이야기 할 때 이 프로토콜을 사전에 공유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게, 알다시피 세상은 디자이너들끼리만 만들어가는게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의 보통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기 때문인데,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는, 흔히 사람의 키를 얘기할 때 1미터 80이라하면 180cm를 의미한다. 하지만 디자인에서는 1m 그리고 80mm를 뜻하는 것이므로 나중에 엉뚱한 치수의 물건이나 인테리어 공사를 보고 싶지 않으면 1,080mm 임을 더블체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인 남자 키만한 180cm라는 길이를 말하고 싶은 거였다면, 이 세계에선 1800이라고 말하는 게 확실하다.


또 하나, 내가 혼난 건 아니지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게 동영상컨텐츠의 화면비율인데, 스토리보드를 짜오는 과제에서 동기 중 하나가 portrait 비율로 그림을 그려오는 바람에 교수님이 발표를 듣지도 않고 화를 버럭 내고 나가셔서 우리 모두가 벙쪘던 기억이 있다. 나라고 뭘 알고서 landscape 비율로 그려간 건 아니고 습관적으로 스케치북을 가로로 놓고 그리다보니 다행히 교수님의 오버스런 분노를 피해갔지만, 이날까지도, 손편하게 세로그립으로 휴대폰 동영상촬영을 하다 흠칫 놀라며 다시 가로촬영으로 바꾸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youtube, vimeo 등 소셜영상 서비스나 각종 미디어플레이어들 전부 landscape 포맷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반 유저들은 아랑곳 않고 손가는 대로 세로촬영 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고 있는 걸 볼 때마다...심지어 instagram은 1:1 square비율의 동영상 포맷으로 크롭해주기까지 하는 걸 볼 때마다...Portrait 비율의 영상컨텐츠는 절대 있을 수 없다며 진노하신 그 교수님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20년 전쯤만 해도 px(픽셀)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자 단위였고, 4와 4분의 3인치 같은 공감이 안되는 방식으로 길이를 얘기하는 미국이 우리와 동시대에 공존하고, 16:9를 와이드스크린이라 부르며 그 좌우로 넓어진 시야가 그렇게 어색해 보일 수가 없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은 px적 사고보다 mm적 사고를 하는 것을 더 힘들어할 수 있고, 미국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의 만듦새는 인치계 특유의 투박함이 묻어날지언정 그 나라 산업디자이너들은 건재하고,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은 점점 다양해지는 컨텐츠의 비율과 형태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지 오늘도 고민하고 있음을 본다.

표준이라는 것은 현재를 위해선 잘 정립해둘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거나 영속하리리라는 믿음은 애시당초 버리는 것이 미래 지향적 자세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2017년 6월생 쌍둥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