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정엄마 진희 언니네 아버지는 10년 넘게 기러기 할아버지로 지내셨다. 손주들 때문에.
거제도가 고향인 언니는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아이가 둘인데 직장을 나가야 하니, 등하교 시간, 등하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어머니가 주중에는 서울 딸네 집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다시 거제도로 내려가 아버지를 챙기셨다.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로 좀 돌리고, 혼자서도 지낼 수 있게 키우기까지 강산이 변했다. 할머니와 정이 든 아이들은 눈물바람으로 이별을 맞았단다. 친정어머니도 우셨을까? 아님 웃으셨을까?
정말 대단한 친정엄마라고 생각했다. 언니의 직장이 워낙 좋아서 그만두기 아까웠을 게다. 입주 도우미 이모님을 구할만한 재력은 됐던 것 같은데, 믿을만한 분을 만나지 못했나 보다.
또 다른 워킹맘, '꾸준한 시간부자'님은 황혼육아를 감당해 주시는 친정 엄마와 복닦거리는 일상을 글로 써서 브런치에 올렸는데, EBS의 섭외를 받았다. 그 집의 사연 역시 손주들을 위해 친정 부모님이 주중 별거 모드시라고. 방송국에서는 요즘 시대의 황혼육아를 조명하며 온 가족이 모두 애쓰는 고단한 일상을 따뜻하게 담았다.
주변에 천운을 타고나서 친정엄마가 건강하시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손주들을 돌봐줄 의향이 있으신,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친정 엄마'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때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워킹맘의 노고를 들여다보면, 그것도 말도 못 하게 험난한 여정이더라.
우리 친정은, 우리 시댁은, 거리도 멀고 일하느라 바쁘시고, 또 육아 타입의 어르신들이 아니라 아이들 키우는 동안 도움을 많이 못 받았다. 나는 오래도록 일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덕분에 발을 동동거리며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느긋한 아침들과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오래도록 보낼 수 있었다. 내게 허락된 복으로 일과는 점점 멀어졌다.
나라에서 저출생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확실하게 보육을 책임진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엄마들은 새벽같이 아이를 맡기고 저녁에 데리러 갈 수 있는 보육 시설, 보육교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으며,
내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노동 환경, 노동 강도, 노동 유연성이 필요하다. 아이라는 돌볼 대상이 생겼을 때, 엄마 혼자 너덜너덜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책임 떠맡기를 주저 않는 가족과 회사와 지역사회 모두의 손길을 보태져야 한다.
일 잘하기로 소문난, 직급 높은 워킹맘 미연 씨는 아기를 낳고선 얼굴에 철판 까는 기술을 장착했단다. 더 길게 육아휴직을 쓸 수 없게 되자, 돌도 안 된 아기를 하는 수 없이 0세 반에 맡겼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영아를 생각해서 적어도 3시 반에는 데려가길 권했다. 하지만 회사 대표님은 탄력 근로시간제니 단축근무란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녀는 철벽 방어를 하며 단축근무를 택했다. 그녀가 3시 반까지 어린이집에 가지는 못하지만, 암투병 중인 친정어머니가 하원 후 한두 시간을 맡아 주시기로 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전설의 친정엄마가 없어도
모든 엄마들께 숨 쉴 틈이 주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워킹맘뿐만 아니라 전업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