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할머니

내비두는 모정

by 김봉란
Baddie Winkle / instagram


결혼을 하고 친정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왕복 2시간이 아무 때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조금 지나니 부모님이 더 멀리 이사를 가시면서 왕복 3시간으로 거리가 늘어났다. 나나 남편이나 확실하게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사람들이다.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부모와의 친밀도가 높은 사람들을 부러워할 때도 있다. 나 같은 사람의 장점은, 남편이나 나나 서로밖에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이 힘을 합해 잘 지내는 수밖에.



관례적으로 ‘친정’은 늘어지도록 마음 편하고 훈훈한, 뭐든지 보듬어주는 따뜻한 곳을 의미한다. 관용구로 ‘친정 일가 같다’라는 말이 있는데, 남이지만 흉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두의 친정집이 꼭 그렇진 않다. 오만가지 가족사가 존재하니 어떤 친정에서는 눈치를 보기도 하고, 가족 간에 평생토록 건너지 못하는 평행선을 재차 확인하기도 한다. 복잡한 감정으로 불편할 수도 있는 곳이다.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가끔 엄마에게 서운함이 생겼다. 산후조리 얘기가 나올 때부터 그랬다. 처음에는 엄마도 호들갑을 떨면서 산후조리원 나와서는 친정에서 3달이라도 있으라 하셨다. 그러더니 조금 지나서는 주변 ‘시어머니’ 친구들 얘기를 듣고는, 요즘은 산후조리원이 너무 잘 돼 있고, 산후 도우미들도 잘해주니까, 엄마 집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겠다고 했다. 별 건 아니지만 호르몬의 영향인지, 찔끔 눈물이 났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첫’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좀 서운했다. 시댁에서는 5남매의 막내아들이 나은 아들이니 거의 101번째 손자여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친정에서는 첫 손주인데, 굉장히 쿨했다. 조금 더 유난스러워도 될 것 같은데.



울 엄마는 내가 자라는 내내 일을 하셔서, 나는 어려서는 할머니 손에 컸고, 동생은 도우미 이모들 손에 자랐다. 엄마가 아기 볼 줄 몰라 그럴 거야, 생각하기로 했다. 보통의 할머니들처럼 아기를 엄청 보고 싶어 하지도 않고, 한없이 너그럽게 대하는 것도 안 됐다. 천성이 엄격하고, 버릇없는 건 딱 질색이며, 주변을 더럽히는 것도 안 좋아했으니, 첫 손주도 할머니를 어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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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릴 때, 남편이 주말 없이 일하느라, 독박 육아를 할 때, 나는 친정이 있는데도 왜 꼭 천애고아처럼 이렇게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기분이 들까? 우리 엄마는 왜 좀 더 헌신적으로 나를 안 도와줄까? 왜 손주를 안 이뻐할까?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이 마흔에, 엄마와 인생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됐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십 년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의문이 풀렸다.


엄마는 환갑에 자신이 헛살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나는 엄마를 다듬는 망치처럼, 세월이라 부를만한 시간을 투쟁적인 관계 속에 살았다. 엄마는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다. 엄마는 자식이 어렸을 때는 기대한 대로 잘 자라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커서 제 맘대로 살며 그녀의 기준과 기대를 이탈하는 꼴을 보고야 말았다. 엄마는 자식에게 쏟았던 돈이, 투자로 치면 회수한 게 별로 없는 망한 수였다. 정성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은혜를 알며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바라면 실망만 크다는 걸 깨달으셨나. 울 엄마는 환갑에 더 이상 인생을 이리 살면 안 되겠구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셨던 모양이다.


많은 친정엄마들이 할머니가 되어서도 황혼육아를 감당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들이 맞벌이를 해야 해서, 혹은 자신들의 일에서 성취를 이루느라, 아니면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등의 이유다. 사회적으로도 육아의 파트너는 남편이 아닌 친정엄마라는 인식이 분명 존재한다. 부모님께 부족한 사례를 해 가며 도움을 요청하는 자식들이 있고, 그에 응하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몸이 아플지언정, 파스를 붙여가며, 기꺼이 도와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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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는 일찍이 거리두기를 하셨다. 이제, 더 이상 자식 때문에, 자식의 자식 때문에, 자신을 홀대하거나,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포기하는 일은 안 하리라, 결심하신 것 같다. 일부러 작정했다기보단, 엄마의 마음이 자연스레 그렇게 흘러갔던 것이 틀림없다.


일을 그만두시면 손주들에게 에너지를 쏟으시려나? 했지만, 종교활동에 매진하셨다. 교회에서 회장직을 내려놓으면 좀 도와주시려나 했더니 악기를 배우고, 운동을 다니며,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쁘시다. 노후 용돈벌이를 생각하며 여러 계획을 세우신다.


미처 몰랐다. 엄마는 환갑부터 자신의 생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했음을.

덜 친절하고 덜 헌신적인 할머니가 될지언정 자유롭게, 오롯이 자신을 위해.

그것은 한편, 자식들을 위한 최고의 자세일 수 있음을 깨달아 가고 있다.


친정 가면 자루 아홉 가지고 온다는 속담이 있다. 가끔 들리는 친정에서 나 역시 반찬을 양손 가득 들고 온다. 그래도 이제야 철이 드나. 더 도움받으려던, 아홉 자루 가져가려던 마음보다, 부모님이 아프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엄마도 둘째가 태어나고 는 조금 더 할머니스러워졌다. 그녀도 할머니는 처음이라 서툴렀던 것들이 좀 달라졌달까.


스스로 헤쳐가도록 내버려 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변태하고 여물었다. 연약한 존재를 돌보며 책임감 있는 성숙한 사랑의 기쁨을 배워가고 있다. 개인적인 꿈과 욕망들을 어쩔 수 없이 절제하는 고통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에 현혹되는 헛바람을 걸러내는 유익을 건지고 있다.



이 훈련 끝에 아마, 나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중요한 것들을 끝까지 해내는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 앞서 걸어가신 신여성 할머니의, 내비둔 모정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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