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를 나와도 별수 없는 일

by 김봉란


친구가 하버드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아니 말로만 들었던, 진리 탐구와 지성의 대표 상징, 하버드라니! 친구의 일인데 마치 내 일인 듯, 쓸데없이 우쭐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몹시 자랑스러웠다. 친하게 똘똘 뭉치던 우리네 삼총사는 그녀를 축하하며 학업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탄탄대로를 거침없이 달릴 것이라 기대했다. 하버드! 한 자리 차지하는 인물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농담처럼 당당히 요구했다. 나중에 우리가 별 볼 일 없이 살게 되면 네가 우리까지 부양하라고! 네가 우리를 위해 큰 집을 지어서 같이 모여 살자고. 우리는 그 비싼 몰디브, 신혼여행으로도 못 가는데, 네가 성공해서 나중에 우리까지 꼭 데려가라고. 그녀는 이런 막무가내 농담들에 허허 웃으며 기분 좋게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끝내고 온 뒤 느지막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사는 일상은 범인의 삶과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상당히 힘들어하는 걸 보니, 하버드에서 배운 것들은 아이를 기르는 것과는 연관성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일하며 육아를 하는 것은 혼자서도, 부부만의 힘으로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 결국 3시간 출퇴근을 길에 쏟더라도 친정엄마 옆으로 이사할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행운아였다. 엄마가 살아계시고, 건강한 데다, 아기를 좋아하는 심성을 가진 지혜롭고 헌신적인 분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그녀는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고도 아이를 기를 수 있게 되었지만, 날마다 헉헉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는 일 가정 양립을 고려해 주지 않으니 늘 스트레스를 받고, 수고하시는 엄마께는 죄송하고, 아이를 기르는 안개 같은 길을 더듬더듬... 하바드 나온 여자도 똑같아 보였다. 그렇다. 생사화복이 생로병사가, 아니 육아하는 엄마의 앞에 놓인 첩첩의 허들이 하버드라고 빗겨 가진 않지. 인생이 공정한 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하버드를 나온 어떤 남자는 좀 상황이 달라 보였다. 여성 고위직 할당제를 없애자고도 하고, 시험을 쳐서 정치인의 자격을 입증하자고도 발언했다. 그것이 공정이며 평등이라고.


사실, 몰랐는데, 엄마가 되고서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불공정을 고스란히 맞이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만 5세만 되어도 누군가는 영재교육을 받고 누군가는 미디어 중독이 된다. 어떤 아이는 위험한 매를 맞고, 어떤 아이는 상전이 된다. 아기의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우리는 모두 거쳐 오지 않았는가.


우리 아이는 의식주의 위협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고 자라고 있지만, 과학고니 하버드 같은 곳은 아마 못 갈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두뇌가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과학고, 하버드를 다녔다고 해서 꼭 비범한 진리를 깨치는 건 아니고 세계관을 넓혀 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내 옆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딱 한 뼘 정도 떨어진 비슷한 동류들만 사는 줄 안다. 환경의 혜택을 받지 못해 처지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이가 존재한다는 건 인식 밖이다. 교만의 담장 안에만 머무를 수 있다.


하버드 나와도 별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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