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물건, 음식, 혹은 서비스를 구매하는 현대인들에게 리뷰는 아주 중요한 정보다. 직접 보거나 만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다른 사람의 체험담은 소비의 실패를 줄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단, 개개인이 가진 서로 다른 기준 때문에 물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때가 있다. (광고성 거짓 리뷰가 있을 때에도) 그럴 때는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실체에 대해 감을 잡는다. 리뷰를 쓴 구매자의 이전 경험이 어떻게 영향을 끼쳐, 무슨 좋은 것을 기대했는데, 어떠한 이유로 만족스럽거나 불만족스러웠는지, 추측해 본다. 차이가 낳은 호불호를 가늠한다.
그런데 리뷰가 이렇게까지 팽팽하게 맞서며, 시끄럽게 갑론을박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인터넷 서점에 이토록 많은 악플이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려 5년 전, 2016년도에 나온 이 책은 2021년 현재까지도 침 튀기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 말이다.
빙의라는 소설적인 장치를 이용해 다큐처럼 건조한 문체로, 잔잔하고 평범하게 표현된 한 여성의 현실 이야기. 나와 동료 엄마, 아내들은 흥건하고 먹먹하고 가슴에 느낌표 천지였기에 모두 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리뷰로 만난 반대파는 이 책이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망상 가득한 미친년에 관한 소설일 뿐이랬다. 처음 그 온도차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비방의 글들이 조작된 댓글부대인가, 의심했다. 그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 키우는 평범한 내가 졸지에 사이코에게 공감하며 울고 부는 이상한 여자가 된 느낌이랄까?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인간들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는 와이프]에서 '김지영의 삶'을 살며 괴물처럼 변해가는 우진 / tvn2019년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되고서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됐다. 영화에 대한 평점 테러가 있었고, 이슈가 되었고, 논란에 대한 해석까지 분분했다. 이 무렵 SNS를 통해 지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흥미로웠다. 어떤 언니는 이 영화 옥에 티는 커피를 타는 장면이라고 했다. 요즘 누가 회사에서 겁도 없이 여자에게 쌍팔년도식 커피 심부름을 시키느냐고, 말이다. 거기에 대꾸하지 못했으나, 나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회사를 다니며 가끔 종종 커피 심부름을 했었다. 또, 친한 후배와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녀도 작품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앞에서 솔직히 힘이 빠졌다. “너는 그랬구나.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후배는 나와 나이 차이는 별로 나지 않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으니, 그럴 수 있나 보다 했다. 적잖이 당황했다만 내가 느낀 것이 다는 아니니까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삼았다. 모두 자기 경험을 토대로 바라보는 한계가 있는 건가.
이것은 확실히 나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성별이 여성이 아니어도, 나이가 어려도, 꼭 자기가 겪은 일이 아니어도,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과장된 소설일 뿐이라 단정 짓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드륵한 그들이 공감을 표했다. 인상적인 평이 하나 기억난다. 유색인종, 한국 여성에 관한 이 소설을 읽은 백인 남성 타일러가, 어느 교양 프로그램에 나와 이 내용이 도대체 왜 논란이 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쟁이도 알아먹을 작품이었다.
어떤 댓글들은 읽다 화가 났다.
“저도 김지영 씨처럼 살았지만 한 순간도 제 삶을 서글프게 생각할 만큼 초라하게 생각지 않았어요. 읽는 내내 불편했네요”
“82년생인데 공감 안 가는 김지영 씨 이야기. 78년생이면 모를까. 우리 할머니 세대 이야기라면 이해하겠다.”
그러니까, 김지영 씨처럼 살지 않아서 공감을 못하고, 김지영 씨처럼 살았어도 공감을 못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비난은 고통을 겪는 다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들이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일에서 열외 당한 특혜 입은 삶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자신은 이 삶을 한 번도 초라하게 생각지 않았다는 우아한 그녀에게도 묻고 싶었다.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들에게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지 못한 너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것인지. 왜 같은 인생을 살고도 고고하게 감사하지 못하느냐고 훈계를 하고 싶은 것인지. 혹시 그녀의 불편함은, 나는 잘 참았는데 너는 왜 광장에 나와서 징징거리느냐의 마음인 건지?
[아는 와이프]에서 '김지영의 삶'을 살며 괴물처럼 변해가는 우진 tvn
수준 이하의 악플들을 제외하고라도 인식 체계가 다른 이들의 혹평이 무색하게 82년생 김지영의 판매량은 100만 부가 넘었으며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중국, 인도네시아, 독일에서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는 소식까지 이어졌다.
다른 나라에 판권이 팔렸다는 것은 그것을 읽고 싶어 할 만한, 또한 그 작품이 주는 울림에 동의할 만한, 또는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는 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요즘같이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시대에 돈을 내고 책을 사겠다는 외국 여성도 이렇게나 많다니, 프랑스의 클레르 도 세호 편집장의 말마따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 보편의 문제가 확실하다.
우리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받으면 한 층 더 우러러보는 심리가 있다. 이미 사랑받는 봉준호 감독도, 영화 기생충도, 윤여정 배우도, 영화 미나리도, 평소에 영화를 안 보는 사람까지 찾아보게 했다. 역시 명장이로구나, 명작이라고 동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타임지에서 선정한 2020년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에 뽑힌 [82년생 김지영]에 관해서라면 여전히 박하더라.
한 젊은 남성이 인터넷 서점의 수준 이하 댓글에서 봤던 리뷰와 동일한 맥락의 서평을 남겼다. 그는 대한민국 야당의 대표였다. 인기로 표를 받아먹는 정치인 말이다. 얼마나 김지영의 삶을 사는 유권자들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며, 무의식 중에 배제하면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2017년 5월 19일에 故노회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께 이 책을 선물하며 '82년생 김지영들을 안아주십시오' 부탁했다는데, 대한민국 리더진의 현주소는 뒷걸음질 중인가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