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분신을 마주하다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얼굴이나 몸 일부가 비슷한 것보다 놀라운 건 보이지 않는 곳의 일치와 연결성이다.
딸은 최근 몇 달간 지루성 피부염 때문에 연고를 처방받아 귀에 바르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당분간 과자를 못 먹게 하고 젤리 같은 달달이도 금했다. 나는 어렸을 때 피부가 건강했고 특별히 약을 발라본 일이 없어 희한하게 생각했다. 환경오염이 정말 문제다, 편의점에서 파는 간식들은 쓰레기 음식인가, 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바로 어제 아침에, 거울 앞에서 면봉으로 귀를 후비는 듯 보이는 남편을 평소처럼 무심히 지나치다, 뭔가 행동이 달라서, 멈추어 유심히 보니 약을 바르고 있는 것이었다. 건조증이나 가려움으로 가끔 몸에 연고를 바르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귀에도 문제가 있다는 건 십수 년을 같이 살면서 몰랐다. 으레 귀 청소를 하는 줄로만 알았지. “당신, 귀는 왜...?”, 하고 물으니 어렸을 때부터 지루성 피부염이 간혹 올라온다고. 귀가 약한지 중이염도 앓았었다고,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이실직고했다.
그제야 몇 년간 찾지 못했던 퍼즐 조각 하나를 찾은 듯 시원해졌다. 의문이 풀린 기분이었다. 딸아이는 돌 무렵 중이염 때문에 고열이 나 고생했었다. 그때도 내 기준에서는 이상했다. 남들에게는 흔한 중이염일지 몰라도 평생 살면서 앓아본 적 없는 병이 아기에게 나타나니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왠지 모르게 명쾌해졌다. 다 지난 일임에도, 혹은 딸이 그때 앓았던 정황이 유전자 때문이 아닐 수 있음에도 아빠와 딸의 약한 귀가 닮아 그렇다고 생각하니 이유를 전혀 모르고 맞닥트릴 때와 다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빠 내림이니 그럴 수 있지.
“당신도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그래서 뿌랭이 귀가 저렇구나” 라며 남편에게 말했다. 정말로 신기해서 감탄한 건데, 남편은 나쁜 건 다 자기 닮아서 탓을 한다고 구시렁댔다. 그도 그럴 것이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좋은 점은 날 닮아서 그렇다고 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한 번쯤 앓고 지난다는 수두를 나는 안 치르고 성인이 되었는데, 아무리 유행해도 늘 말짱한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변비 안 걸리고 늘 건강한 바나나 똥을 싸는 첫째에게는 엄마 장을 닮았나 보다고 했고 아들임에도 그 흔한 발목 부상 한번 없이 청소년이 된 것 역시, 일생에 깁스할 일 없이 조심성 많고 뼈가 튼튼한 엄마 덕이라고 했다. 물론 알러지성 비염과 4학년부터 눈이 나빠져 안경 쓰는 아들이 나랑 똑같다고 굳이 말하진 않았다.
엄마 아빠께 물려받은 삶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워보니, 이해할 수 없었던 안젤리나 졸리의 결정에 수긍이 간다. 그녀의 어머니는 10년간 유방암 투병을 하다 56세에 생을 마감했고 할머니와 이모 또한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유전자 검사를 받은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에게도 유방암 발병률이 높은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음을 알고 2013년, 선제적으로 멀쩡한 유방과 난소를 절제했다. 유전의 힘이 얼마나 센지 짐작한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염색체가 자신의 삶도 빨리 마감시킬 거라 믿었나 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도 몇십에서 몇백만 원을 지불하면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입안에 스틱으로 쓱쓱 문질러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해 유전자 질병 검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눈코입이 닮은 것만큼이나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자세한 결과지로 암, 뇌심혈관계, 소화기계, 신경정신과 등등의 병을 부모로부터 어떻게 받았는지, 병이 있을 확률은 어떠한지 확인할 수 있단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가정을 꾸리고 2세를 계획하는 조건부 만남의 선남선녀들은 결혼 정보 회사에 건강검진 진단서가 아니라 유전자 도표를 제출해, 원하는 배우자를 찾게 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닌가 상상해 본다.
엊그제는 어린이집에 학부모 상담을 하러 갔다. 선생님은 딸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려주셨다. 둘째는 어려도 첫째와 달리 야무지고, 자기 할 일, 자기 물건 잘 챙기는 아이라 무난하게 키우는 중인데, 선생님도 내게, 어머님은 초등 준비와 관련해 걱정할 게 전혀 없다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런데, 웃으면서 한마디를 흘리셨다.
“뿌랭이는 겉으로는 정말 모범생 그 자첸데 가끔 ‘허당기’를 보여요.
한글도 막힘없이 제일 잘 읽고 글씨도 잘 쓰는데, 수업 시간에 어쩌다 뭘 시키면 딴생각하다 놓쳤는지 애써 감추며 또 어찌어찌 답을 하더라고요.”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초, 중, 고 교실에 앉아 있었던 어린 내가 눈앞에 보였다. 선생님들 앞에서는 단아하고 똑똑한 이미지를 굳게 지키던, 그러나 늘 혼자만의 공상을 멈추지 않았던.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건 어쩜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상담을 마치고 딸아이와 함께 집에 걸어오는 하원길에, 그녀가 손을 놓고 하나로 묶은 머리를 흔들며 저만치 앞으로 먼저 달려갔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