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나를 맞고 무던하게 2주가 지나갈... 뻔했다. 심지어 어떤 임산부도 모더나를 맞았다들었다.
주사 맞은 부위의 뻐근함 말고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타이레놀조차 필요치 않았다. 그냥 애들이 방학이고, 그냥 여름이니까 몸이 힘든 게지. 급하게 잔여백신을 맞은 탓에 다다음날부터 휴가기간이 맞물린 것이 좀 에러였다. 아이들과 함께 산과 바다를 여행하는 것은 가끔 극기훈련 같기도 하니까, 기운이 딸리는 것이 당연했다. 백신 후유증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추어탕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어탕을 먹지 못했던 30대 초반의 어느 여름날, 동네 어르신이 추어탕을 사주셔서 억지로 먹었던 일이 있다. 당시 몸이 좋지 않았는데, 말 그대로 눈이 번쩍 떠지는 체험을 했다. 흐릿한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고 생각이 명료해졌다. 없던 총기가 생긴 기분이었다. 이후, 몸이 허할 때면 걸쭉한 적갈색 국물이 생각난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추어탕집에 갔다. 돈가스와 콩국수, 수제비, 민물새우 매운탕까지 전부 맛있는 단골집에서 몸보신을 했다. 과식도 했다. 나와서는 조금 긴 산책으로 소화를 시켰다.
집에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2층 계단 오르는 것도 힘겨워 발을 질질 끌었다. 숨이 가빴다. 침대에 누웠다. 점점 더 호흡이 곤란해졌다. 무섭지는 않았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여러 번 경험했던 거라. 하지만 누웠음에도 진정이 되지 않고 점점 심해지는 것이 이러다 요단강을 건널까 봐 걱정이 됐다.
아이들 티브이를 틀어주고 응급실 갈 채비를 했다.
아참!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와중에, 설마 셋째를 가진 건가 하며 서랍 구석에 남아있던 임신 테스트기를 재빨리 해봤다. 숨은 점점 거칠어졌지만 비임신의 한 줄을 확인하고 마음만은 가벼워졌다.
병원에서는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체크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상태가 덜 긴급해 보였는지 계속 대기하랬다. 그날따라 유난히 환자가 많다고. 2시간쯤 기다리니 숨이 돌아왔다. 차갑게 오그라들고 저릿저릿하던 손과 발도 감각을 되찾았다. 응급실에서 자연치유가 됐다. 요즘 백신을 맞고 이런 증상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많다고 하니 괜히 안심도 됐다. 병원비는 1900원만 냈다. 손목에 달아준 환자용 종이 팔찌에 39세라고 쓰여 있어서 기분도 좋아졌다. 나의 불혹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라며 기운까지 솟았다.
돌아와 편히 잤다. 다음날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아들 등교도, 딸 등원도 아빠가 맡아 준비시켰다. 아빠가 고른 옷을 본 딸이, 잠옷을 주면 어떻게! 라며 나무랐다. 몸을 일으켜 옷을 골라줬다.
남편이 설거지를 했다. 남편이 빨래를 널었다. 남편이 치우지 않은 거실 바닥은 쳐다보지 않았다. 남편이 버리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도 무시했다.
오롯이 누웠고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의 시간을 최대한 누렸다. 새로 산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슬 읽었다. 50대 후반에도 10킬로씩 뛴다는 그의 강인함이 갖고 싶었다. 아무튼 행복했다. 아파도 일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엄마의 자리인데, 이런 특혜를 받고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덕분에 몸이 신속히 좋아졌다. 호흡곤란은 해프닝이었나 보다.
다음 날, 다시 주부 모드로 돌아와 아침부터 싸우는 남매를 복식호흡으로 제압했고, 아들의 신청곡인 다이너마이트를 들으며 경쾌하게 청소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빨래를 개키는데, 호흡이 또 가빠졌다. 참고 속옷과 겉옷, 아들, 딸, 남편 옷을 종류별로 옷장에 넣고 나니, 누워야겠다. 아들에겐 동생 책 읽어주는 권수대로 백 원씩 용돈을 주겠다며 방에서 쫓아냈다.
참 이상하다. 책을 읽거나,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는 것도 괜찮은데, 쌓인 집안일을 의욕적으로 해보려는 순간 다시 호흡곤란이 오다니. 이게 백신 후유증인지, 애들 방학 후유증인 건지, 집안일 알레르기가 생긴 건지 좀 알쏭달쏭하다.
추신. 백신을 맞은 후에는 아프지 않아도 잘 쉬어야 한답니다. 물도 많이 마시랍니다. 내 몸이 아플 땐, 지금 몸속에서 항체가 생겨나고 있구나 마인드 컨트롤해 보세요. 모두의 건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