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화. 공감이 돼야 공감을 하지

'공감'과 '동감'은 다르다

by 커리어포유
도무지 공감이 안 되는데 어떻게 공감을 해 줘요?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할 때 한 번씩 나오는 질문이다.

소통을 잘하려면 '경청'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말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둘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데에도 선뜻 동의한다.

둘 중 그나마 쉬운 하나를 고르라면, '경청'을 꼽는 경우가 많다.

경청이 귀를 여는 일이라면, 공감은 마음을 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청보다 공감 앞에서 더 자주 멈칫거린다.

"전 그 사람 마음이 잘 안 느껴지는데요."

"같은 경험도 없고, 솔직히 별로 와닿지도 않는데..."

"납득이 안 되는데, 괜히 공감하는 척하는 건 위선 같아서요"

솔직한 마음이다.

그리고 아주 흔한 오해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동감'을 혼동한다.

둘은 얼핏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동감은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맞아. 나도 그래."

"나도 예전에 그런 경험 있었어."

"그 마음 나도 너무 잘 알아."

그런데 꼭 '동감'해야지만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에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존중하려는 태도다.

"난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힘들었겠다."

"그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게 바로 공감이다.

동감은 같음을 찾고, 공감은 다름을 안아준다.

공감은 감정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존재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맞는 말인지, 타당한지, 내가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그리고 조언을 하고 설득을 시도한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그럴 시간에 해결책부터 찾자."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논리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느리다.

해결보다 먼저 필요한 건,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말해주는 작은 여백이다.

공감은 판단을 잠시 미루고 마음부터 들어주는 태도다.

말을 잘한다는 건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은 화려한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진심 어린 연결에서 비롯된다.

공감에도 '기술'은 있다.

적절한 피드백, 맞장구, 표정, 눈빛, 고개 끄덕임처럼 연습할 수 있는 요소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자세다.


진짜 공감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랑 생각은 다르지만, 네 마음을 알고 싶어."
"나는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들어줄게."
"너에게 그게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알고 싶어."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 머물러주는 것.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주는 것.
그리고 말없이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게 공감이다.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한 달이 지났어요.
그런데 요즘 회사에 있으면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아요.
팀 회의 때 중요한 안건을 나만 모르는 거 같고,
외근에서 돌아오면 다들 점심 먹으러 가서 텅 빈 사무실.
회식도 당일에야 통보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상에서 나만 빠져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제일 친했던 동료한테 조심스레 얘길 꺼냈어요.
"나 요즘 좀 소외되는 기분이 들어."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거예요.
"야, 너 너무 예민하다~ 다들 바빠서 그런 거지."
내가 정말 예민한 걸까요?
복귀한 내가 눈치 없이 서운해하는 걸까요?


그녀는 그저 소외된 것 같다는 마음을 솔직히 꺼내놓았을 뿐이다.

그 말에 "그래서 힘들었구나."라는 단 한마디만 돌아왔더라면 그녀는 조금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다들 겪는 일이야."
"뭐 그런 걸로 상처받고 그래?"

겉으론 위로처럼 보이는 말들이 사실은 상대의 감정을 잘라내는 말이 되곤 한다.

누군가는 그걸 '현실적인 조언'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그 순간 그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하는 일이다.


공감은
"나도 그런 경험 있어."보다
"나는 잘 모르지만, 그 말이 너에겐 정말 컸구나."
라고 말해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원했던 건 해결책이나 조언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그럴 수 있겠다." "마음 많이 쓰였겠다."라고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말이었다.

마음이 힘들다고 털어놨을 때 그 마음을 함께 느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것만큼 외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그 커뮤니티에는

그녀의 마음에 조심스레 다가가는 댓글들이 달렸다.

"저도 그랬어요. 투명인간 된 기분, 너무 잘 알아요."

"예민한 거 아니에요. 그 말 듣고 저도 울컥했어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런 감정 드는 게 당연해요."

익명의 공감이 때론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다시 글을 남겼다.

"(...) 고맙다는 말, 이 말로는 부족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는 조금 덜 외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고작 그 정도 일로 왜 그래?"
"나는 더 힘들어도 참았는데..."

하지만 공감은 '비교'가 아니라 '존중'이다.
힘듦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대신,
그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누군가의 하루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

그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공감은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용기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내가 그 마음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면, 이미 충분히 공감의 언어가 된다.




[공감의 언어]

1.'맞아, 나도 그랬어'보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상대가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부터 꺼낸다.

"나도 비슷한 일 있었어. 그땐 말이지..."

이런 말은 무심코 대화의 중심을 '상대'에서 '나'로 옮겨버린다.

공감은 경험을 나누기보다 감정을 머물게 해주는 말에서 시작된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이 한마디는

'당신의 감정을 지금 이 자리에서 존중하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공감이 필요한 순간,

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그 마음이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먼저다.


2. 해결보다 연결

우리는 누군가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 습관처럼 해결책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그럼 다음부턴 그렇게 하지 마."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하지만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선 해결보다 연결이 먼저다.

"말 꺼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얘기해 줘서 고마워."

이 한마디가 '지금 네 마음에 내가 함께 있어'라는 신호가 된다.

공감은 문제를 풀기보다, 그 곁에 머무는데서 시작된다.

해결은 연결 다음에 와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3. 사실보다 감정에 초점을 맞추기
"그게 그런 게 아냐."

많은 대화가 이 한마디에서 멈춘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이 말은 상대의 감정을 단정 짓고 덜어내는 말이다.
공감화법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마음이 다쳤겠네."
"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사실 관계를 정리하기보다,
그 일로 인해 마음이 어디까지 흔들렸는지에 집중하는 것.
그 시선의 전환이 말의 온도를 바꾼다.


4. 불완전한 이해라도 괜찮다는 메시지 전하기
"미안, 그건 난 잘 모르겠어."
"솔직히 나는 그런 상황에 있어본 적이 없어서..."
이 말은 자칫 공감을 멈추는 말이 되기 쉽다.

공감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완전히 알 순 없어도 그 곁에 머물겠다는 마음이다.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네 얘기를 듣고 싶어."
"나는 잘 모르지만, 그 마음이 궁금해."

이 한마디는 '너의 감정에 다가가고 싶다'는 신호가 된다.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감정을 존중하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가장 멀리 데려간다.




공감은 절대 화려한 말솜씨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마음에 잘 닿고 싶어 하는 진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말보다 마음을 먼저 건네보자.

그것이 가장 진심에 가까운 말이 될 테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