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라는 병에 메러디스 그레이와 리베카 솔닛이 건네는 위로
현대인의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인 ‘치매’에 걸리는 사람은 대략 75만 명이며, 12분 당 1명씩 발병하고 있다(2018년 기준). 이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10.1%에 해당한다. 치매는 환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의 일상도 힘겹게 만든다.
치매는 시간을 앗아가버린다.
어쩌면, 치매에 걸린 가족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환자보다 더 큰 일상의 변화를 맞게 된다. 사람 간 관계가 지속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를 새로 만들거나 확장할 때, 심지어 관계를 정리할 때도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간 위에서 살아가고, 시간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치매는 시간을 앗아가버린다. 환자는 시간 속에서 멈춰 버린다. 도저히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환경만 남게 된다.
치매를 위로하는 두 작품 <그레이 아나토미>와 <멀고도 가까운>
<그레이 아나토미>의 메러디스 그레이와 <멀고도 가까운>의 리베카 솔닛은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던진다. 메러더스와 리베카는 공통점이 많다. 그들은 평생 어머니의 그늘 아래서 살아갔다. 자기 주장이 강한 어머니 아래 그들은 한 번도 마음껏 숨을 쉬지 못한다. 어머니의 억압 혹은 질투 밑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반짝거리는 재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녀들은 항상 어머니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당연히 두 모녀의 관계는 나쁘고, 그들은 데면데면하다. 어느 날 그들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다. 그때부터 모녀의 관계는 너무 이르게 전복된다. 딸들이 그들의 보호자가 된다.
어머니를 살피는 일, 특히 치매에 걸린 모친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의 직업-의사와 작가-은 그것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밤새 병원 당직을 서고 지친 메러디스는 엄마의 자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해 그녀는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왜 이 일을 오래 동안 그냥 둔 거죠?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이 외침은 사실상 자신과 자신의 엄마를 향한 것이었다. 많은 것들이 버겁게 느껴진 순간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가장 큰 짐이었기에 메러디스는 그저 외칠뿐이었다.
평생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 시간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그러나, 모녀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낸다. 바로 평생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쳐다본다. 리베카 솔닛은 물건을 자주 잊어 잃어버리는 엄마를 위해 복사본의 복사본을 만든다. 자식들 중 가장 연락하기가 쉬웠던 그녀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제1보호자가 된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엄마가 알아보나요?”라는 질문을 지긋지긋하게 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이 기간이 사실상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처음 알아보는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어머니는 나를 더 진실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머니를 더 진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피상적인 것이 많이 벗겨져 나가자, 어머니라는 인간성의 핵심, 그리고 그 연약함이 날것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평생 과수원에서 일하시느라 명절 때나 뵐 수 있었다. 할머니와 보냈던 즐거운 추억을 찾으려면 한참 생각에 잠겨야 한다. 치매에 걸리면서 농사를 그만둔 할머니는 한동안 우리 집에서 같이 지냈다. 당신이 살아온 시절을 하염없이 얘기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밥을 먹곤 했다. 당신의 이야기에 절절히 공감하기에는, 시대도 다르고 친밀감도 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문득 할머니가 떠올라 전화해볼까 고민하지만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메러디스 그레이와 리베카 솔닛을 보면서 할머니와 나 또한 새로운 관계에 진입했으며, 지금이 서로를 평생 처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시간 속에 멈춰버리기 전에 종종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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