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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28. 2024

적극적으로 이방인의 삶 즐기기

#치앙마이 일년살기

다시 치앙마이의 미세먼지 수치가 전 세계 랭킹 권으로 올라섰다.


10일 전 즈음에 기적적으로(?) 비가 내린 후 적어도 4~5일간은 미세먼지 수치가 매우 낮았지만 역시 한 번의 비는 모자랐나 보다.


이제는 그려려니 하고 짐을 챙겨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빵빵하게 틀어주는 치앙마이 대학교 도서관에 나와있다. 저번주까지는 학교 시험기간이었는지 애들로 가득 찼고 (대딩이지만 나에게는 애들이지 뭐...) 오토바이를 주차할 자리를 찾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오늘 와보니 그 많던 학생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한산하다. 비록 창 밖은 미세먼지로 가득할지언정 도서관 내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쾌적하다.


오늘자 한산한 치앙마이 대학교 도서관, 밖은 미세먼지가 그득하다


오늘부터는 어학원도 5주간의 방학에 돌입했다. 치앙마이 대학교 태국어 어학원 과정은 총 1년이지만 3개월마다 한 달씩 방학이 있어서 실제 수업 기간은 9개월이다. 수업은 재밌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들 대부분이 태국어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서 수업시간이 아주 즐겁지만은 않다. 특히 매 수업마다 20분 정도는 반 학생들과 프리토킹 시간이 진행되는데 태국어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과 짝이 되어서 말하기 연습을 하게 되면 괴로울 지경이다. 수업 시작한 지 거의 반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한 마디도 못 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기로 유명한 태국인들이지만 너무하다 싶었는지 선생님도 방학 전 마지막 수업에서 한 마디를 했다.


"방학 동안 조금이라도 복습을 해보고 방학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적어도 태국어 자음 정도는 다들 외워서 오자..."


우리나라로 치면 수업을 들은 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가나다를 모르는 수준이라 선생님도 한숨을 내쉰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정녕, 진정으로 태국어 공부를 해볼 생각이 있다면 한국에서 미리 태국어를 좀 공부를 해온 후에 치앙마이에서는 레벨 2의 과정을 듣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건 5주의 방학이 시작되었고, 나는 어디 한 번 죽어볼 각오로 무에타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최근 들어서 무에타이의 정체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7개월 전과 비교하면 체력이나 실력 면에서 엄청나게 향상되기는 했는데 '꽤나 잘함'의 단계 앞에서 내 몸이 밍기적 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 정도면 선수가 아닌 37세의 여성인 것 치고는 매우 잘하는 수준일지 모르겠지만 이미 내 눈은 한껏 높아져 있다.


그래서 요즘 더 열심히 운동을 하는 중인데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하냐면, 하루 중 모든 에너지를 운동 시간에 쏟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기력이 떨어져서 골골 거리는 수준이다.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은 전혀 아니겠지만 나는 매우 즐겁다.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가면 이렇게 집중해서 운동하는 시간도 끝나버릴지 모른다.


이곳의 무에타이 체육관에서는 나의 성별이나 나이가 아닌 나의 수준에 맞춰서 운동을 시켜준다. 잘하는 편이니까 더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한국이었다면 일단 체육관 코치부터 37세라는 내 나이를 듣고 나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출 것이고 더 적극적으로 기술을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 뻔하다. 또한 내가 회사생활을 한다면 회사에서 어쩌다가 '저는 무에타이를 합니다'라는 말을 한 그 순간 이걸 두고 굉장히 많은 말이 오갈 것이다.


왜 이런 추측을 하냐면 한국에서 매우 자주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할많하않)


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나이를 크게 중요하게 보지 않고, 무에타이에 미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어서 내가 묻어갈 수 있으며, 외국인인 내가 무에타이를 이렇게나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기특하게 봐준다. 특히 내가 다니는 체육관 오너는 나만 보면 한 마디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그는 영어도 수준급으로 잘하고 무에타이에 대한 지식수준도 상당히 높은지라 나는 그의 오지랖은 언제나 두 팔 벌려서 환영한다.


또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내가 이곳에서 이방인의 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어를 배우고는 있지만 굳이 태국인의 무리에 속하고자 노력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소모적인 술자리나 약속 자리에 참여할 틈이 보이면 정중히 거절하고 내가 외국인인지라 이 거절이 매우 쉽다.


사실 이 부분은 태국인들 보다는 치앙마이에서 오다가다가 만나게 되는 한국인들을 더 조심해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한국인 분들은 그들의 무리에 끼지 않으니 뒤에서 내 뒷담화를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같이 일 하는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 볼 일이 있는 사이도 아니니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사회생활, 무리생활이라는 것은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예전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스윗한 제목과는 달리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충 이해한 바로는 상대에게 친절한 특성을 가진, 사회생활을 잘하는 종이 더 똑똑하며 결국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생존했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 사회생활, 무리생활이라는 것이 너무 과다하 못해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루트를 따르지 않으면 정말이지 주위에서 온갖 난리 부르스를 쳐 댄다.


나라고 이런 가스라이팅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닌데, 그래도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무에타이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다.


아니 1회차밖에 주어지지 않는 내 소중한 삶인데 지들이 왜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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