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Jun 02. 2024

죽음이 두렵다면 삶을 보라

#치앙마이 일년살기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종종 같이 스파링을 하던 부탄 친구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운동을 하는 시간에 작별인사를 하러 와준 덕에 나도 '안녕, 집까지 조심히 가'하고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이벤트였다. 나 역시도 여기에서 머물 날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불안함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원래 나의 기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양육환경의 결과일 수도 있다. 혹은, 한국이라는 엄청나게 경쟁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건대 엄마도 여기에 큰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엄마는 항상 불안해했고 나에게 여과 없이 자신의 불안함을 내비쳤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불안함이라는 불을 꺼주는 소방관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소방관 역할을 해줘도 엄마는 '너는 너무 무서워, 내가 너 아니면 누구에게 이러겠니, 내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어'와 같은 말을 했고 나는 소방관인데도 불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엄마의 불안함을 해결해 주려 노력하며 정작 나는 불안함에 먹혀버렸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격한 업무/격한 운동/격한 음주라는 3대 아이템을 활용하여 불안함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내가 왜 불안한지에 대해서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안함을 느낄 새가 없이 불안함을 마비시키는 방법이었다.


치앙마이에 와서 격한 업무/격한 음주라는 아이템은 포기했는데 생각보다는 어렵다. 불안을 맨 정신으로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격한 운동이라는 아이템은 남아 있어서 이것에 의지해서 미치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원래는 만 37세의 나이를 고려해서 운동 강도를 조금 줄이는 중이었는데 최근에는 불안함이 몰려와서 다시 거의 매일 운동으로 스케줄을 변경했다. 이 정도로 무에타이를 하면 진짜 이제는 시합에 나가야 하나 싶기도 할 정도다.


최근 느끼는 불안은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밀려오면 불안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영화관에서 매드맥스 시리즈인 '퓨리오사'를 보고 왔는데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고 전혀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현재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당장 뭐라도 이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불안해진다. 혹은 정 반대로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열심히 일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양가적인 감정이 머릿속에서 피 터지게 싸운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지금처럼 연락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잔뜩 지쳐버린다.


치앙마이에 와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문제가 터져 나온다. 평온한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은 삶의 잔인한 현실이자 고통이다.


불안함을 잊어보려 하는 것 중에는 운동 말고 독서 및 필사도 있다. 요즘은 '데일리 필로소피'라는 철학책을 읽고 필사한다. 최근에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보게 되었다.


'죽음이 두렵다면 삶을 보라' (p.135)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라는 의미란다. 죽음이 두렵다면 삶을 보고 불행이 두렵다면 행복을 보라고 한다. 양쪽을 다 바라봐야 온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용이 이게 다라서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삶에 집중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든다는 걸까? 아니면 삶에는 죽음도 존재하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라는 의미인 걸까?혹은 죽음이 존재하니 삶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죽음이 두렵다면 삶을 보라는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그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이 존재하는 삶이니 타인이 나에게 가하는 압박이나 가스라이팅에 '꺼져라, 싫다'라고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회밖에 안 주어진 소중한 내 삶인 것을.


아, 생각이 이렇게 이어지는 걸 보니 책의 내용은 삶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내용인 것 같다.


그런다고 죽음에 대한 불안이 줄어드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삶에 집중해보도록 노력해봐야겠다.


그래도 뭐라도 한다.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않도록.


*조용한 카페에 들르고 조용한 시골길에서 드라이브를 하며 현재를 즐기려 애써봤다.

*시내 외곽이고 굳이 찾아서 갈 필요까진 없겠지만, 카페는 valentan이라는 카페

*드라이브를 즐긴 곳은 Fernpresso at Lake 카페 부근의 도로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 복수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