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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y 07. 2024

무더위를 끝낼 비가 내린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는 어제오늘 계속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부글부글 들끓었던 대지가 찬 물을 끼얹은 것처럼 한 김 식는데 이틀 연속으로 비가 내리다니. 집의 온 창문을 열어두고 비에 젖은 풀냄새를 만끽했다.


아니 뭐 비 좀 올 수도 있지 무슨 오바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치앙마이의 기온은 40도를 넘었다. 극강의 무더위를 한 달 정도 견뎌내는 중이었다. 40도가 넘어서면 물탱크도 열을 받아서 욕실에서 물이 안 나오는 수준이다.   


이번주는 내내 비소식이 있어서 일기예보를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돈다. 본격적인 우기의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 정도 비가 온다면 무더위와 미세먼지 모두 유의미한 수준으로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아침에는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산책에 나섰다. 너무 뜨거워서 산책은 꿈도 못 꾸었는데 비가 내리고 나니 걷기도 한결 편하다. 태국 등 동남아에서 오토바이가 생활화된 까닭은 대중교통이 불편한 탓도 있겠지만 이 지긋지긋한 더위 탓도 크다.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걷느냔 말이다. 치앙마이에서는 걷는 사람은 오로지 관광객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는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경계선에 걸쳐진 사람이니 비가 내린 직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지 않는 틈을 타서 걸었다. 오랜만에 걸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칠 때와는 또 다른 치앙마이의 풍경이 펼쳐진다.


엊그제 마사지를 받았던 집 앞을 지나가는데 마사지사분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후... 마사지는 훌륭했는데 온몸이 분리되는 기분이었달까. 아픈 곳을 중점적으로 공략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지만 다음 날 하루 종일 앓아누울 정도였다. 한두 번으로는 택도 없다고 다음에 또 오랬는데 간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밤만 되면 가게 주인과 동네 외국인들이 모여서 한 잔 거하게 하는 가맥집 스타일의 가게는 보아하니 어제도 거하게 술판이 벌어진 것 같다. 술병이 잔뜩 쌓여있다. 치앙마이에서 산책을 할 때면 그냥 일반 가정집이나 가게인데도 한국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 흥미롭고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전 날 한바탕 술파티가 벌어진 모양이다


신나게 걸어서 단골 카페에 도착해 오렌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두고 잠시 앉아 여유를 즐겼다. 태국에서는 오렌지 쥬스가 들어간 커피가 대유행인데 누군가는 이것을 두고 하와이안 피자와 같은 취급을 하기도 한다. '에? 커피에 오렌지 쥬스를 넣는다고?!!! 말 도 안 돼!!!!' 그렇지만 잘하는 집에서 마시면 정말 맛있는걸. 그냥 오렌지 쥬스에 에스프레소를 섞는 수준은 별로 맛이 없고 오렌지 베이스를 따로 만들어야 더 맛있는데 내가 다니는 집이 그렇게 만들어 준다.



커피 한 잔에 행복해져서 잠시 여유를 즐겼다.  잠시나마 행복하고 잠시나마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요즘은 지속적으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안함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중이었단 말이지. 극심한 무더위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고 잠시나마 불안함에서 한 발짝 벗어난 상태를 경험하니 내가 느끼는 불안함도 조금은 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보았다. 어쨌건 24시간 내내 불안한 것은 아니고 수면시간+하루 한 시간 정도는  불안하지 않나. 이렇게 견디다 보면 불안함느끼지 않는 시간이 조금은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불안을 해소하고 삶의 의지를 되찾기 위해서 으악으악으악!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서 할 일을 만들고 극기훈련 모드로 지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아, 이것도 회사생활 할 때 배웠던 성과중심적인 사고다. 하지만 성과는 이미 내가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내고 있었다는 걸 오늘 문득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성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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