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Jul 30. 2024

길 잃기의 묘미

#치앙마이 일년살기

아침에 커피와 빵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정확히는 빵을 먼저 사고 단골 카페에 들르는 동선이었다.


평소 치앙마이 시내의 경우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비게이션이 없이도 길을 거의 다 알고 있는지라 이번에도 비를 켜지 않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거의 맞게 갔는데 골목 잘못 들어섰다. 한 블록을 더 가서 좌회전이었는데 한 블록 전에 좌회전을 한 것이다. 어차피 방향은 맞으니까 가다 보면 길이 나오겠거니 했다.


대충의 방향만 잡고 가다가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내가 좋아하는 성의 노상카페가 보이길래 과감히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왜인지 모르게 처음 본 곳이지만 저기를 꼭 가야겠다 싶은 날.


그렇게 오토바이를 한쪽에 주차하고 커피를 한 잔 시켰는데 낭만이 빵빵 터지는 거라.


nomade coffee


커피빈은 라이트와 미디엄 로스트 중에 고를 수 있었고 사장님이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핸드프레소라는 기구를 사용해서 커피를 내려주셨다. (핸드프레소는 사람의 악력을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기구다)


예쁜 유리잔에 유리로 된 빨대와 함께 커피를 내어주셨는데 꽤 괜찮은 맛이었다. 노점 뒤편에 캠핑용 의자를 놓아두셔서 의자에 앉아서 유유자적 모닝커피를 즐겼다.


바로 옆에서는 혼다의 커브라는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크루아상을 판매하는 분도 계셨는데 빵은 원래 단골집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지 않고 구경만 했다.



아, 나는 치앙마이의 이런 감성이 왜 이리도 좋은지.


모든 게 무작위로 다 뒤섞여 있다. 어떤 건물은 새로 지어서 삐까뻔쩍하고 바로 옆 건물은 판잣집이고 그 건너편은 오래된 사원이고 그 옆에는 노점이 있고 그 앞으로는 이런 도시와 안 어울릴 것 같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현지인들 틈에 섞여서 걸어간다.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서 은근한 조화를 이룬다.


이 카페만 해도 그렇다. 길을 가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견한 카페인데 커피 맛은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는 곳들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맛을 낸다. 그리고 단 돈 2천원.


의자에 앉아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을 구경했다. 너무 길거리에 있어서 그런지 옆에서 쓰레기 냄새가 조금 올라오긴 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냄새까지도 합쳐져서 이 날 이 순간의 공감각을 이루었다고 해야 할까.


늘 다니던 카페도 갬성이라고 하면 뒤처지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도 참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치앙마이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감각을 충전하며, 길을 잃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길을 잃을 때 훨씬 더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는 빈도수가 높아지기도 한다.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도 길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너무 긍정적인 의미부여가 아닌가 다가도 그것이 인생에 매우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아니, 의미부여가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심리 상담하시는 분들도 그래서 '리프레이밍 Reframing'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이는 상담자가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상담방식이다. 나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상담사님에게 그동안 나의 삶에 대해 설명하면서 '뭐 하나를 오래 하지 못했다'라고 했는데 상담사님은 이를 두고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것을 시도한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주셨다.


그러니까, 길을 잃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닌 것이다. 원래의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도 예상치도 못한 근사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어제 밤에는 앞으로 뭘하지라는 걱정에 휩싸여 잠을 설쳤는데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삶의 의외성을 조금 더 즐겨봐야지라며 생각의 방향을 전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숫자를 놓자 벌어진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